병인순교 15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발표회는 대전과 청주, 수원, 원주 등 4개 교구 후원, 갈매못과 신리, 배론, 연풍, 요당리 등 5개 성지 공동 주관으로 마련됐다.
이 학술발표회는 ‘갈매못 다섯 성인의 삶과 영성’이라는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박해 시대 순교성인들의 구체적인 삶과 그 삶을 통해 드러낸 영성을 밝혀, 현대 신앙인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돕고자 마련됐다.
3월 12일 대전교구 대천성당에서 열린 학술발표회에서는 김정환 신부(대전교구 내포교회사연구소 소장)가 ‘성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위앵 순교자의 영성’에 관해 연구, 발표했다. 이어 한윤식 신부(부산가톨릭대 교수)가 ‘성 장주기 요셉의 삶과 신앙’을, 차기진 박사(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가 ‘황석두 성인의 삶과 신앙’에 대해 밝혔다. 각 논평에는 장동하 신부(가톨릭대 교수), 정인숙 교수(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 김대섭 신부(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가 나섰다.
유흥식 주교(대전교구장)는 이날 기조강연을 통해 우리가 병인박해를 기억하는 까닭은, 이 박해는 조선이란 한 국가가 기존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교회를 향해 거대한 폭력을 함부로 행사한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유 주교는 “우리가 자유롭고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신앙의 자유나 사상의 다양성 추구가 언제까지나 지켜져야 할 중요한 덕목임을 온 세상에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주교는 아울러 “순교성인들은, 성인들이란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들처럼 살고자 노력했던 분들 가운데에서 하늘에 의해서 드러난 분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신다”면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들 역시 그렇게 살 수 있음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계시기에,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성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는 성인들과의 통공 속에서 신앙생활을 늘 새롭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유 주교는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이 ‘화석’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회심과 자비 속에서 늘 새롭게 우리와 마주하길 바란다”고 권했다.
■‘성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위앵 순교자 영성’- 김정환 신부
“성모 신심과 십자가 영성 살아”
1866년 갈매못에서 함께 순교한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위앵 신부의 기본적인 영성은 19세기 중반 프랑스교회의 영향 아래 형성됐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영성은 당시 교회 안에서 강조되던 ‘성모 신심’과 ‘십자가 영성’이다.
다블뤼 주교의 영성은 21년간 이뤄진 조선에서의 활동과 풍부한 기록 등으로 비교적 쉽게 살펴볼 수 있다. 그의 기본 영성 안에서 특히 부각되는 것은 성모 신심과 순교 영성이었다. 그는 조선에서도 충청도 수리치골에서 성모성심회를 설립했고, 성모무염시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 비오 9세 교황의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칙서를 조선어로 번역했다. 또한 다블뤼 주교의 순교 영성은 십자가 영성과 선교에 대한 열망이 발전한 형태로 판단된다. 그는 조선에서 박해 기간 중 가장 오랫동안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순교’라는 관점 아래 조선교회 역사와 순교자들의 약전을 저술하고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오메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의 고유한 영성을 논하기엔, 그들은 너무 짧은 삶을 살았고 기록상의 한계도 있다. 둘 중 비교적 기록이 많고 조선에서 3년 정도 활동했던 오메트르 신부의 영성생활에서는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이 두 축을 이룬다. 특히 그는 자신의 방 안에 성모경당을 꾸며놓고 신자들이 방문해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박해 중에 다른 선교사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다.
십자가 영성은 두 신부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오메트르 신부는 어려서부터 갖추고 있던 장점인 인내를 십자가 영성으로 발전시켰고, 조선에서 순교를 통해 완성했다. 위앵 신부 역시 기꺼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여 선교사로서의 길을 걸어갔고, 갈매못에서 순교해 짧은 생을 마쳤다.
■‘성 장주기 요셉의 삶과 신앙’- 한윤식 신부
“삶 자체가 자녀 신앙교육 본보기”
장주기 요셉 성인의 인생 여정은 자녀 신앙교육의 살아있는 장(場)과 같이 여겨진다.
그는 대세와 보례를 통해 천주교에 입문한 후, 아내와 네 자녀에게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받도록 했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감내해야 했던 긴 피난살이와 배론 골짜기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자녀들에게는 훌륭한 신앙교육의 장이 되었을 것이다.
배론에 신학교가 설립되면서 그는 신학교 ‘집주인’과 신학교 근처 교우회 회장이 되는 큰 인생 변화를 겪는다. 먼저 그는 자신이 살던 집을 신학교 교사(敎士)로 제공했다. 또 신학교 유지와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바깥세상을 살피고, 신학교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애썼다. 공소회장으로서도 장주기는 신자로서의 본분을 다했고, 교우들은 그의 겸손하고 어진 마음과 착한 행실을 본받고자 했다. 이러한 삶은 천주교 신자 부모로서 그 자녀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신앙교육의 본보기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긴 인생 여정을 순교로 끝맺는 성인의 이야기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 자녀들과 일가친척들에게 강력하고 효과적인 신앙교육의 한 장면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순교라 불리는 그의 죽음은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결과였다. 따라서 순교 사실 자체가 지니는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순교에까지 이르게 돈 신앙인으로서의 삶일 것이다.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장주기 성인의 인생 여정이라는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비추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장주기 성인을 기리고 본받는 참 모습이고, 순교성인의 영성을 현재화하는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황석두 성인의 삶과 신앙’- 차기진 박사
“완덕 추구한 삶… 순교로 완성”
황석두 성인의 삶과 신앙은 봉사와 기도, 묵상으로 점철돼 있었고, 이는 복음 선교의 노력으로 드러나곤 했다. 궁극적으로는 순교 원의로 귀결됐다. 그의 삶과 신앙의 지향을 가장 잘 설명한 말은 “광양 시절을 만나 마음대로 권화해 보고 싶다”는 것과 “칼을 받고서 치명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베르뇌 주교나 페롱 신부는 그를 ‘가장 훌륭한 복사’ 혹은 ‘조선 포교지 전체에서 가장 훌륭한 회장’이라고 평가했다. 덧붙여 페롱 신부는 황석두가 순교한 직후에 얻었던 덕행의 평가에 관해 “여러 교우들이, 심지어 비신자들마저도 루카를 성인처럼 여겼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라고 기록했다.
그의 신앙 생애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제1기는 영세 입교한 뒤부터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만나는 1848년 무렵까지로, 가정 안에서의 복음 선교에 노력했다. 신앙 생애 제2기에 황석두는 조선대목구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교황청의 허락을 얻지 못해 신학교 생활은 중단됐다. 제3기 때는 투기로 빚을 지면서 봉사활동 금지령도 받게 되지만, 그는 잘못을 뉘우치고 빚을 갚기 위해 노력했다. 이어 제4기는 봉사활동을 재개한 때부터 순교할 때까지를 말한다. 그는 이 시기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의 복사로 활동하고 한글 서적 편찬 등을 돕다가 1866년 3월 11일 포졸들에게 자수한다. 마음속에 간직해 오던 순교 원의를 스스로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순교하는 순간까지도 비신자들을 위한 복음 선교에 노력했고, 어떠한 문초와 형벌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는 순교 용덕을 드러내곤 했다.
그는 어느 순교 선조 못지않게 일생 동안 완덕을 추구하는 삶을 지향했다. 궁극적으로 순교를 통해 이를 완성한 모범적인 신앙인이자 용감한 그리스도의 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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