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신자들과 만날 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험을 한 경우가 한두 번은 있을 법합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온 세상 창조주이시자 절대자이신 분을 부르는 첫걸음부터 삐걱대기 일쑤입니다.
개신교에서 쓰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유일신’ 개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를 ‘유일’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결과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에 존칭 접미사 ‘-님’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가 아닙니다. 성경이 처음 우리말로 번역되던 19세기 말에는 한글표기법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통일된 표기가 어려웠습니다. 거기다 성경을 번역한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말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나 표기에 대한 안목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경에 자주 나오는 ‘天主(천주)’라는 단어도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하느님’ 외에 ‘하나님, 하누님, 하나님, 한울님’ 등 다양한 형태로 표기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믿는 절대자 ‘하느님’은 역사적으로 ‘하나님’으로 소급하고,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천(天)’을 뜻하는 ‘하나’에 존칭 접미사 ‘-님’이 결합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제2음절 끝소리 ‘ㄹ’이 탈락한 어형이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근대국어 문헌에 처음 보이지만 아주 이른 시기부터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아래아(ㆍ)가 ‘ㅡ’로 변하는 규칙에 따라 ‘하느님’으로 변합니다.
‘주님의 기도’ 첫머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것을 봐도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절대자가 ‘하늘에 계신 분’이지 ‘하나밖에 없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분이 같은 주님이시라면 굳이 부르는 명칭을 가지고 싸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분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자녀인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셨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순간 순간 제자들에게 당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물어보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마르 8,29)
만일 한 형제이면서 주님의 가르침이나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껍데기만 가지고 싸운다면 그분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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