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매 주일 복음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일이 맡겨졌다. 2015년 ‘서울 주보’ 1면 표지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그림으로 읽는 복음’도 평화신문에 연재 중이었던 터, 소망하던 일이었지만 중압감이 컸다. 밥 먹는 시간 빼고는 그림만 그렸다. 매주 마감을 하고 나면 왠지 마주하기 두려워 덮어놓았다.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난 건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였다. 화실 바닥에 펼쳐진 100여 장 그림들에서는 매주 고민하고 묵상했던 흔적들이 선연했다. 눈물이 쏟아지는데 감당이 안 됐다. 성화 작업을 수없이 했지만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체험이었다. 정미연(소화데레사·서울 세검정본당) 화백은 “엄청난 하느님의 시간 위에 내가 올라탔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2016’ 주제로 4월 8~18일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는 그러한 정 화백의 신앙적 고백이 고스란히 나눠지는 시간이다.
“한 해 전례시기에 따른 복음 내용을 그림으로 읽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많은 신자 분들이 오셔서 새롭게 피정하는 기분으로 주님과 만나셨으면 합니다. 인쇄물에서 만나지 못한 ‘원그림’의 느낌도 체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서울 주보, 평화신문에 게재했던 작품들과 함께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사도 바오로의 길’, ‘십자가와 14처’, 한지 작품 등 5개 섹션을 통해 작가의 신앙적 면면을 결집시키고 있다. 성화(聖畵)를 ‘가슴을 두드리는 그림’으로 정의하는 그답게 각 작품들에는 치열한 기도와 체험이 녹아있고 울림이 있다. 수난의 절정이 각인된 십자가상 예수의 오그라진 손, 자아를 투영시킨 14처화, 말에서 떨어진 사울을 바라보는 예수의 눈물 맺힌 얼굴 등에서는 묵직한 화두가 전해져 온다.
이 전시는 경주 예술의전당 나우갤러리(4월 22일~5월 6일),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5월 13일~6월 11일), 해운대 오션갤러리(9월 22일~10월 6일)로 이어진다. 특별히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 전시에 정 화백은 또 다른 기대를 나타냈다. “한국적 심성의 성화를 소개함으로써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14년 전시에서 경주 토함산 석굴암을 배경으로 한 최후의 만찬, 에밀레종 비천(飛天)문양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예수 등으로 눈길을 끌었던 정 화백. 이번 전시에서는 고려시대 복장의 예수를 등장시키고 석가의 십대 제자에 예수의 열두 제자를 오버랩시키는 등 한국적 성화를 드러내는데 더 정성을 들였다.
이런 맥락에서 정 화백이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은 ‘민화’를 풀어낸 성화 작업이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 도련님 모습의 예수님 같이, 우리 고유의 민화적 요소를 적용해서 이 시대 젊은이들이 편안하게 하느님께 다가서도록 하고 싶습니다.”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한 자신만의 ‘재밌는’ 성화 작업도 꿈이다. 그는 “예수님에게 코가 뀄다”고 했다. 1995년 서울 세검정성당 기공 기념전을 통해 첫 개인전을 가진 후 작품 이력에는 교회 미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제 ‘가톨릭 성화 작가’라는 호칭도 낯설지 않다.
“묘한 방법으로 이끄셔서 여기까지 왔다면 그것을 성숙시켜야죠. 하느님 앞에 모든 걸 던져놓습니다. 특히 주보 표지화를 그리고 난 뒤 더욱 그런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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