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지주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렬을 시작으로 성주간을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의 표정은 엄숙했고, 늘 춤과 노래로 요란했던 미사도 이날은 조용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이날의 예식은 더 요란한 축제 분위기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입당행렬 전 성지가지를 축복하면서 한 강론 중에 “지금 야자나무잎을 들고 환호하며 예수님의 입성을 기념하는 여러분들과 같이 오래 전에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던 사람들도 기쁨과 기대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치던 사람들로 바뀌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하자 신자들의 분위기가 가라 앉았습니다.
얼마 전, 쉐벳이 카운티에서 스테이트로 승격됐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단순히 행정구역상 이름이 조금 승격되었다는 의미와 그에 따라 좀 더 많은 공무원들이 앉을 자리가 마련될 거라는 결과밖에 기대할 수 없는 소식이었지만, 쉐벳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쉐벳 주변 마을인 아강그리알 사람들도 자신들에게 돌아오게 될 미지의 혜택에 대해 기대하면서 역시 이 소식을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 작은 마을에 공항이 생길 거라는 근거 없는 소문과 함께, 아강그리알 또한 행정구역상으로 위치가 승격될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몇 년 안에 마을이 눈부시게 발전하게 될 거라는 장밋빛 미래가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3달이 채 지나지 않아 아강그리알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대가 현실과 거리가 먼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실망은 질투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는데, 그 회의의 핵심 내용은 “분란을 많이 일으킨 다른 마을들은 행정구역상으로 승격이 되는 등 혜택을 입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동안 너무 얌전하게 지내온 대가로 이러한 혜택에서 소외됐다. 이제 분란을 일으켜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보여야 한다”였습니다.
오랜 내전과 부족간의 다툼으로 지쳐 평화를 갈망하던 아강그리알 사람들. 다른 지역에서는 마을 간 복수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지만 우리 지역은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서 기쁘고 자랑스럽다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분란을 부르고 싶다고 합니다.
교활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무지하고, 순박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이기적인 이들의 모습에 실망하게 됩니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왔고 함께 앞으로 많이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사라진 사람들을 찾아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선 기분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께서도 같은 마음이셨을까요. 당신을 열렬히 환호하며 맞이하는 사람들이 곧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 칠 것을 미리 알고 계셨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호하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봅니다. 과연 어떤 표정이셨을지,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셨는지 그분의 눈길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 후원금은 수원교구 해외선교지를 위해 사용됩니다.
※ 후원 ARS : 1877-0581
※ 후원 계좌 : 국민 612501-01-370421, 우리 1005-801-315879, 농협 1076-01-012387, 신협 03227-12-004926, 신한 100-030-732807(예금주:(재)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
※ 해외선교지 신부님들과 교우들을 위한 기도 후원 안내
-해외선교지 신부님들과 교우들을 위한 묵주기도, 주모경 등을 봉헌한 뒤 해외선교후원회로 알려주시면 영적꽃다발을 만들어 해외선교지에 전달해 드립니다.
※ 문의 031-268-2310 해외선교후원회(cafe.daum.net/casuwonsudan)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