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마음은 편안하고 책임과 사명감에서도 많이 벗어나 좀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사제생활 속에서 보람도 느끼고 긍지도 가졌기에 좀 좋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허전하고, 불만스러웠다. 먹는 것조차 소화가 안 돼 장에 가스가 찼다. 그럴 때마다 몸보다 마음이 더 불편했다.
마음을 보니 그 속에는 불안, 가책, 불만, 실망 같은 것이 쌓여 있었다. 게다가 그것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리 불쑥 저리 불쑥 튀어 다니면서 주먹질을 해대곤 했다. 이 잡놈들은 내가 놀러 다니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사람들과 잘 어울릴 땐 잠잠하다. 그러다가도 혼자 있게 되면 내 정신과 감정에 방사포로 포격을 가해 내 마음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긴급 복구를 했지만 하도 자주 포격을 가하니까 수습이 잘 안 된다. 그렇게 입은 손상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게 뭐야? 왜 자꾸 이래? 네가 그 수준밖에 안 돼? 그 정도로 흔들려? 이거 안 되겠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속이 메말라 갈라져 있었고 오래 전의 억압과 좌절이 그대로 남아 썩어 가며 악취를 뿜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은 어떨까’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혼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갖 욕심과 이기심과 이해관계로 얼룩져 있었다. 독선은 꼴불견이었다. 어떤 마음에선 여유와 관심과 사랑이란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총체적 혼돈 상태에서 엉뚱한 것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신앙생활에 열심하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열심한 신자는 “나는 내 마음을 모르겠어요. 도저히 안정시킬 수가 없어요. 신부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람도 싫고 세상도 싫어요”하고 호소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나요? 무엇을 어떻게 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그랬더니 그는 그냥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그가 다시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야할까? 그 최우선 과제는 마음의 혼란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 속의 잡동사니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해 가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영적 성숙, 보다 풍요로운 삶의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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