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오후 8시 합동분향소 내 천주교 부스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2016년 예수부활대축일 메시지를 통해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할 것을 당부했다. 바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안산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719일이 된 4월 3일 하느님 자비주일에 찾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는 한산했다. 7000㎡가 넘는 드넓은 공간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순찰을 하고 있는 경찰 정도였다.
분향소가 설치됐던 2014년 4월말에는 이곳에서 조문하려면 화랑유원지 밖에서부터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조문행렬을 따라와야 했다.
주차장에서 분향소로 향하는 길. 그 오른편에는 ‘기다림의 성당’이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박성호(임마누엘)군을 기억하면서 지은 건물이다. 참사 200일째 되던 2014년 11월 1일, 당시 성호군의 본당인 선부동성가정본당 주임이었던 인진교 신부의 주례로 축복됐다. 15㎡ 정도 밖에 안되는 이 아담한 목조건물은 실제 성당은 아니다.
하지만 신자·비신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기도할 수 있도록 늘 열려있는 기도공간이다.
비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지만, 건물 안은 따듯했다. 누군가 기도를 하고 떠났는지 가지런히 정돈된 방석과 담요에는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성호군과 그의 모친을 향한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메시지가 더 따듯한 온기를 느끼게 해줬다.
분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조문객이 많다는 주일 오후인데도 분향소를 안내하는 이들보다도 조문객의 수가 더 적었다.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와 조문을 왔다는 한 조문객은 “저도 주변 지인들도 분향소가 아직도 운영되는 줄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알게 돼 조문하기 위해 찾아왔다”면서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무관심해 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안내자가 전해주는 국화를 받아들고 영정 앞으로 나아갔다. 희생자의 지인들이 영정 앞에 두고 간 물건들은 다양했다. 어린 나이에 희생된 이를 위한 장난감 로봇에서부터 연예인 사진, 친구들의 사진,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들. 그리고 신자인 학생들의 영정 앞에는 묵주나 낡은 스카풀라가 놓여있기도 했다.
그리고 분향소 가장 중앙에는 아직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사진이 있었다. 이곳은 2014년 4월부터 시간이 멈춰있는 듯 했다. 아직 희생자의 시신이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의 경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도, 생명을 우선시하지 않는 사회 풍조도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흐르는 시간 속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오후 7시 경이 되자 교구가 운영하는 천주교 부스에 불빛이 들어오고 신자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했다. 7시30분부터 묵주기도를 바치기 위해서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향소를 향한 발길도 관심도 희미해져 갔지만, 교구는 분향소가 설치된 2년 전부터 매일 오후 8시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생명을 우선시하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바치고 미사를 봉헌해왔다.
합동분향소에 신자들의 기도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이 기도소리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실종자가 가족의 품에 돌아오는 그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합동분향소 입구.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팻말과 수많은 메시지가 담긴 종이배.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