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교황청 ‘백주년기념재단’ 에우티미오 틸리아코스 사무총장 초청 간담회
“인간 존중 없는 경제구조 계속되면 위험… 교회가 나서야”
금융 등 각계에 사회교리 전파할 방안 논의
사람 거부하고 돈 숭배하는 경제 흐름 경고
“대화로 문제 해결 돕는 것이 교회 궁극 사명”
4월 7일 주교회의 5층 대강당에서 교황청 백주년기념재단 에우티미오 틸리아코스 사무총장과 한국교회 사회교리 관련 전문가들이 간담회를 갖고 있다.
교황청 백주년기념재단 사무총장 에우티미오 틸리아코스(Eutimio Tiliacos) 박사가 한국교회, 특히 한국 가톨릭 경제인들에게 재단 설립 취지와 구체적인 활동 내용 등을 알리기 위해 4월 5~8일 방한했다.
이에 주교회의 사무처(사무처장 김준철 신부)는 틸리아코스 사무총장을 초청, 한국 가톨릭교회 내 사회교리 전문가들과의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는 4월 7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5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 간담회를 통해 틸리아코스 사무총장은 재단의 활동을 소개하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과 대신학교 사회교리 담당 교수 등 간담회 참가자들과 함께 금융과 공동선, 사회각계에서 사회교리를 전파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주교회의 사무국장 송용민 신부는 “한국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가 자본주의 문제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고, 정의평화위원회가 활동하면서 겪는 환경, 인권 등 여러 문제들이 모두 자본과 금융의 문제로 귀결된다”면서 “교회가 자본주의 문화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사회교리 담당자들과 함께 논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간담회 취지를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주교회의 정평위 총무 김유정 신부와 서울대교구 정평위원장 박동호 신부를 비롯한 정평위원 8명, 박정우 신부(가톨릭대)를 포함한 광주·대구·인천·대전교구 대신학교 사회교리 담당 신부 5명이 참석했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각국은 엄청난 돈을 풀어 경기 부양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원자재 가격은 불안정했고, 세계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반면 금융계에는 돈이 계속 몰리고 있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대형은행들이 국내총생산(GDP)의 10배가 넘는 위험한 파생금융상품 투자를 하다가 국가 파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한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대기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160조원을 육박하면서도 이들은 제조업 투자를 꺼리고 있다. 실질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큰 영향을 주는 제조업에 대한 투자 지연으로 노동의 질은 악화되고, 중장년층의 실직과 청년 취업난은 가중됐다. 또 실직으로 인해 빈곤이 확산되고 경제난으로 가정은 붕괴되고 있다. 청년층은 삼포(취업, 연애, 결혼)를 넘어 오포세대(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 추가)로 전락하는 등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돈이 넘쳐나도 이들을 위해 선뜻 나서는 곳은 없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있지만 이들이 대출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과연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청 백주념기념재단(Centesimus Annus - Pro Pontifice Foundation, CAPP)이 세계 각지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 백주년기념재단은 1993년 6월 5일 사회교리 전파를 위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지시로 설립됐다. 재단 이름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백주년」(Centesimus Annus)에서 따왔다.
에우티미오 틸리아코스 사무총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부정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높이고 계시다”면서 “우리는 다양한 대화 경로를 통해 이를 경제계 인사들과 정책입안자들에게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인 사회교리를 전파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 금융과 공동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자신의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통해 경제와 금융이 인간의 공동선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돈이란 인간에게 봉사해야지 절대로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교황은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똑같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교황에게는 부자가 반드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존중하며,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환기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관대한 연대를 권고합니다. 저는 경제와 금융이 인간을 위한 윤리적 접근으로 돌아올 것을 권고합니다”라고 썼다.
같은 해, 백주년기념재단은 교황청에서 금융과 공동선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도 같은 주제로 학술대회를 진행했다. 틸리아코스 사무총장은 “당시 전 세계는 경제위기에 빠져 있었고, 실업률도 굉장히 높았으며, 경제가 좋지 않다보니 가정의 붕괴도 수없이 이어졌다”면서 “당시 학술대회는 금융인들을 초청해 글로벌화 된 세계에서 금융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올해 초에는 몰타에서 몰타중앙은행 총재 주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모건스탠리와 시티은행 등 시중은행 대표들과, 유럽중앙은행 총재 등이 모였고, 이들은 앞으로 경제와 관련된 회의에서는 언제나 공동선을 위한 연대와 윤리를 포함해야 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금융권 종사자 사이에서 윤리라는 것이 아직 확실히 정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금융소비자의 윤리 또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단은 현재 교황의 뜻에 따라 자발적 연대기금(voluntarily solidarity fund)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른바 미소금융(microfinancing)을 제안하고 있다. 재단은 실직 후 재취업이 어려운 이들에게 인간 존엄성을 찾는데 미소금융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견을 모으고 있다.
- 전 세계 다양한 목소리 모아
백주년기념재단은 아일랜드와 몰타에서 발표한 선언문 외에도 여러 논의와 대화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이를 세계 각지에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틸리아코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하나의 싱크탱크”라면서, “다양한 분야의 목소리를 듣고 각 분야에 교회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틸리아코스 사무총장이 한국을 찾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인구와 다양성 면에서도 세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경제계와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있는 재단의 입장에서 떠오르는 경제 강국 한국을 무시할 수는 없다.
틸리아코스 박사는 “CAPP 한국지부 설립뿐만 아니라 경제계와 지속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한국의 단체가 있다면 이 단체와 연대해서 활동을 할 수도 있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 잘못된 사회 변화 위해 대화 나서야
이날 간담회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인 박동호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오늘날의 경제시스템과 금융시스템 자체를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으로 진단했다”면서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과 사회교리, 윤리를 거부하고 갓머니(god money)를 우상화하는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 대해 분명히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박 신부는 금융투기의 절대자유를 허용하는 신자유주의와 금태환주의 폐지로 마음대로 찍어내는 달러화 중심의 세계 금융시스템이 오늘날의 병폐를 몰고 왔다고 지적하고, “교회의 사회교리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이를 거부할 권리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틸리아코스 사무총장은 “비판도 필요하지만 대화가 없으면 대결만 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화에 나서야 한다”면서 “교회는 공동선을 추구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은 지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 사회가 인간 중심적인 시스템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틸리아코스 사무총장은 이어 “교황은 지금처럼 포용하지 않는 경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경제시스템을 계속해 나갈 때, 우리 모두 죽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면서 “우리 모두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혹은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대화를 통해 가톨릭의 원칙을 모두에게 전파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백주년기념재단은 오는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가난 극복을 위한 상업적 시도들 - 난민 구호, 우리의 도전’을 주제로 바티칸에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사도좌재산관리처장 도메니코 칼카뇨 추기경, 교황청 재무원장 조지 펠 추기경, 국제카리타스 의장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교황청 사회홍보평의회 클라우디오 마리아 첼리 대주교 등이 발표자 등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또한 전국가톨릭경제인협의회 유영희 전 회장(유도그룹 대표)이 대회 중 ‘경제적 자유, 사회적 기업정신과 가난’ 주제 토론에 논평자로 참여한다.
■ 「새로운 사태」와 「백주년」
교회 너머 세상 향해 인간 발전 지침 제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는 가톨릭교회 최초의 사회회칙이다.
레오 13세 교황은 ‘새로운 사태 - 자본과 노동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부제로 1891년 5월 15일 「새로운 사태」를 발표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이 회칙을 통해 18세기 이후 산업화로 발생한 “새로운 사태”로 인한 여러 문제들을 지적하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임금과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 보장, 국가의 의무와 한계, 그리고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사회주의적 해결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노동헌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회칙은 사회 문제에 대해 교회의 입장을 표명한 최초의 문헌으로 이후 이어지는 교황의 사회교리 회칙들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또한 이전까지의 교황 회칙들과는 달리 「새로운 사태」는 교회 내부적인 문제를 넘어서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인간의 발전과 해방을 향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했다.
이후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사회 불의, 가난과 빈부격차, 인권 침해와 차별, 폭력과 전쟁 등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예언직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회칙 「새로운 사태」는 우선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바탕으로 노동 문제의 당사자인 노동자와 공익의 대표 기관으로서의 정부와 적임자인 교회가 함께 협력, 대처하는 길만이 진정한 해결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백주년」(Centesimus Annus)은 「새로운 사태」가 반포된 지 100주년을 맞이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1년 5월 1일(노동절)에 발표한 회칙이다. 「새로운 사태」 이후 100년이 흐르는 동안 사회상황이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지만 교회의 사회교리는 그 원리와 태도에서 한결같은 흐름을 유지해왔다.
이 회칙은 동구 공산주의 몰락 후의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 기업의 역할 강조, 소비주의에 대한 경고, 소외문제와 생태계 파괴 등을 다루고 있다.
2014년 5월 백주년기념재단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는 모습. 【CNS자료사진】
■ 교황청 백주년기념재단은
기업의 사회교리 실천 위해 노력
백주년기념재단(이사장 도미니코 수그라니예스 비켈)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회칙 「백주년」 발표를 계기로 직접 설립한 재단이다.
1993년 6월 5일 설립한 재단은 총 9명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운영한다. 이사진은 대부분 기업가들이다. 재단은 기업과 전문가 지도자들 사이에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 연구와 전파를 증진하고, 교회의 역할을 사회 전 분야로 확대하며, 교황청의 선교 활동 기금 모금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현실성 있는 사회교리 구현을 위해 현장에서의 실천을 강조하고, 특히 기업의 사회교리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와 협력해 평신도와 수도자를 대상으로 사회교리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재단의 대표적인 활동이다.
최용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