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주교 문장과 사목표어 “Semper Gaudete(항상 기뻐하라)”(테살 전 5,16)
“항상 기뻐하라(Semper Gaudete).”
원주교구장 자리를 떠나는 김지석 주교는 주교 수품 성구처럼 원주교구장으로서 지난 23년간의 시간은 사제단 교구민과 함께 기쁘고 행복한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4월 6일 원주교구장 집무실에서 만난 김 주교는 “대과없이 교구장 역할을 수행한데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면서 “많은 사랑을 주었던 교구민 모두에게도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고 이임 소감을 밝혔다.
“교구장으로 지낸 나날이 결코 짧지는 않은데, 엊그제의 일처럼 생각됩니다. 사제단과 교구 신자들의 애정 어린 도움으로 그 시간을 잘 지내왔습니다. 정말로 행복하게 교구장직을 수행했던 것 같습니다.”
김 주교는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 주교에게 원주는 나고 자란 고향. 집무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원동주교좌성당은 세례를 받고 복사단 활동을 했던 장소다. 7세 때부터 복사를 서며 성소의 꿈을 키웠다. 사제가 된 이후에도 보좌, 주임 신부로 생활했던 곳이다.
“나고 자란 고향에서 생을 보낼 수 있었으니 참으로 복이 많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항상 기뻐하라”는 김 주교가 지금도 제일 마음에 두고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다. “모든 신앙생활의 핵심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제 생활을 하면서도 좋아했던 구절이었습니다. 주교 임명을 받았을 때 이 문구가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당시 김 주교는 교구장 승계권이 있는 부주교로 임명된 한국교회 첫 사례였다. ‘날벼락을 맞은 듯했다’고 당시를 떠올린 김 주교. 무척 두려웠고 교구를 어떻게 이끌어갈까 걱정도 컸다고 회고했다.
“수품 성구에는 주교직이 어렵고 무겁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자는 결심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또 가급적 화내는 일은 하지 말자는 심정도 내포돼 있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기쁨을 유지한다면 화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마음에서다.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나 부담감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교, 교구장으로 사는 동안 기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동안 대단히 크게 화를 낸 기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평소 “걸출한 성서학자인 선종완 신부를 배출한 성서의 고향이며 민주화 운동을 꽃피운 정의의 도장이며 사회복지 사업을 체계화시킨 온정의 땅”으로 원주교구를 말해온 김 주교에게서는 그만큼 원주교구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김 주교는 아쉬움 보다는 홀가분함을 느낀다고 했다.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였던 만큼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서 벗어난다는 가뿐함도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김 주교는 고(故) 지학순 주교에 이어 1993년 제2대 교구장을 맡으며 격변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새 천년기를 향한 교구 복음화의 도약 기반을 탄탄히 다져왔다. 교구 중장기 발전위원회를 설립해서 10년 단위의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다시 3단계로 나눠 세부 실천 계획을 마련하는 등 각 시대 상황에 따른 사목적 대안 마련과 내실화에 힘을 기울였다. 지리적 산업적으로 다양한 환경을 이루고 있는 교구 특성에 맞춰 지구 공동사목 활성화 등에도 주력했다. 지난해에는 교구 전체가 교구 설정 50주년의 희년을 보냈다. 13개 본당 1만3390명의 작은 교구로 출발한 원주교구가 반세기의 양적 질적 성장에 감사드리며 새로운 50주년을 향해 첫걸음을 떼는 자리였다.
김 주교는 그 같은 사목적 역량의 공로를 ‘사제단’ 에게 돌렸다. “사제들이 정말 잘 따라줬습니다. 사제단의 결속과 일치는 교구장직을 맡았던 동안 가장 큰 보람으로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김 주교가 교구장을 맡는 동안에 우선적인 순위를 두었던 것은 ‘사제단의 일치’와 ‘진정한 신앙인으로 사는 것’ 즉 신앙의 내실이었다. 김 주교는 그 중에서도 사제단의 단결을 첫 손에 꼽았다.
“사제단이 하나로 되지 않으면 신자들과 하나됨도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교구장 임명 당시 52명의 사제가 있었는데, 선배들은 솔선수범 앞장서서 나를 이끌어주었고 후배들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더 잘 따라주었던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원주교구는 사제단의 결속 의식이 강조돼 왔다고 한다. 초대 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사제들에게 우선적으로 역설한 사항이 사제단의 단결이었다. 그 분위기가 지속돼 교구장을 중심으로 사제단이 잘 뭉쳐져 있다고 했다.
지학순 주교에 대한 기억도 들려줬다. “상당히 엄하고 무서웠던 분”으로 떠올린 김 주교는 “지 주교님을 사회정의 운동가로 조명하곤 하는데, 그분은 그 이전에 신앙인이었고 사목자였다”면서 “일련의 지 주교님 활동은 당시 시대 상황 속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세상에 선포하고 실천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신앙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소신은 김 주교가 교구장 초기 시절부터 강조해 왔던 부분이다. “복음화의 첫째 대상은 자기 자신이 돼야 하고 그 복음화는 ‘신앙’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실천과 사회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과 ‘우리’ 행동은 ‘신앙’으로 구분된다는 것. 그런 면에서 신자들이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은 사목자의 중요한 몫이라고 했다.
김 주교는 지난해 원주교구 설정 50주년 기념미사에서도 이러한 신앙의 내적 성숙을 강조했다. “내적 성장에 집중할 때 외적 변화도 이루어진다”며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삶 안에서 내적 성장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어줄 것”을 교구민들에게 당부한 바 있다.
교구장으로 이루고자 했던 사목 계획들은 어느 정도 실행했다고 생각하기에 특별한 아쉬움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 김 주교는 “교구 규모 자체가 작으니까 여러 힘든 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영세적인 부분은 생태적인 것이기에 어려움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후임 교구장인 조규만 주교에 대해서는 “학자이시면서 주교로서 10년의 사목 생활을 하신 분이기에 원주교구에서도 잘 생활하시며 교구를 이끌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은퇴 후 2014년 준공된 서곡 사제관에서 지낼 예정이다. 교구 은퇴 사제관으로 준비된 곳이다. “입주민 1호가 됐다”고 웃으며 말한 김 주교는 “아직 특별한 은퇴 후 계획은 없다” 면서 “본당 신부 이동할 때처럼 그냥 숙소만 바뀌는 느낌이다” 고 담담해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고통 어려움을 주시면 그것을 견딜 힘과 능력을 함께 주십니다. 주교직을 잘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개인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눈을 감는 순간에도 기뻐야 하는데 걱정이다”는 김 주교는 “기쁘게 죽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행복일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김 주교의 이메일 주소 아이디가 떠올랐다.
“너희는 기뻐하라”, ‘Gaudete’ 였다.
2014년 3월, 교구 설정 49주년 기념미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5년 5월, 교구 설정 50주년 축하식.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