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만 옆으로 살짝 돌려도 다른 세상이 보인다. 산 쪽을 보다 강 쪽을 보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마찬가지로 생각의 관점을 조금만 바꿔도 파국을 막을 수 있고 관계를 지켜갈 수 있다. 자기 생각, 자기 이익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한다면 어떻게 다른 이와 함께 할 수 있겠는가? 각자가 다 생각과 마음이 다른데 자기 식대로 생각한다면 패가망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내가 30년 이상 살아온 내 고향 동네 이름을 목골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골 출신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수십 년 후 문서를 통해 보니 목골이 아니라 못골이었던 것이다. 나는 긴 세월 내 고향 동네마저 잘못 알고 살아온 것이다. 그게 그뿐이었으랴?
우리 삶의 결실은 욕구 충족을 위해 상황을 알아차리고 해석하고 판단한 결과로 만들어 진다. 조금만 부정적으로 생각해도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망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 우리가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해석하는 것은 현 상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경험이 결정하는 것이다. 눈, 코, 귀, 혀, 피부 등 오감을 통해 세상 여러 상황을 접하게 되면 지성은 이를 받아들여 저장하고 저장된 정보를 살려내 새로운 상황을 알아차리고 판단해 행동하게 된다.
컴퓨터나 알파고는 다 이런 인간 기능을 활용해 심리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만든 기계다.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기계가 이제는 인간 지성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가 넣어준 운영 시스템과 정보대로 작동하듯이 인간도 보고 들은 정보대로 알아차리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들은 정보의 확실성은 60% 수준밖에 안 된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실을 확인하려 하지는 않고 자기 생각대로 하고 있으니 실패를 밥 먹듯 하게 되는 것이다. 코나 귀와 눈도 거리·집중력에 따라 불확실해진다. 더구나 사람은 환경에 따라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교리도 그렇다. 종교마다 진리라고 말하지만 사이비 종교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더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는데도 이를 믿고 있고 지켜가려는 특성도 있다. 그러니 얼마나 갈등과 오류가 많이 생기겠는가? 부부나 친구 사이의 오해, 사업의 실패, 국민적 갈등도 그래서 생겨나고 있다. 조금만 진실을 알려 해도 파탄을 면할 수 있는데 우리는 자기 자신, 자기 당파, 자기 사상만 주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거나 불신하는 이유, 잘못 판단하여 인생을 그르치는 이유는 바로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의 진실을 알려하지 않고, 상황을 잘 살펴보지도 않으면서 자기 지식과 정보를 맹목적으로 믿거나 지켜가려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에게는 실패를 막아주거나 바로 잡아주는 장치가 돼 있다. 생각이라는 사고 기능과 양심이라는 경고 기능이다. 단 1초 만이라도 상황을 알아보고 결정하면 실패 확률이 60%는 줄어든다. 양심의 경고마저 무시하면 인간성이 왜곡돼 인성이 피폐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본능을 믿고 따른다.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단 1, 2초라도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만 해도 파탄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정말 삶이 기쁘고 성공적이려면 당신의 부정적 사고 패턴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잠깐만이라도 점검해 보라. 지도자라면 공동체의 의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라. 그것이 영적 성숙의 길이요 풍요로운 삶의 길이다. 자기 생각을 조금만 더 바르고 좋게 하기 시작해도 마음은 풍요로워지고 천국에 한발 다가서게 된다.
하재별 신부 원로사목자/사랑과 평화 생활실천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