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과 떼제 정신을 나눴던 시간이 행복하다는 실바노 수사는 돌아가서도 한반도 평화를 늘 기억하겠다고 말한다.
수채물감, 크레용, 싸인펜 등으로 표현한 강렬한 색감, 단순하고 절제된 표현… 실바노 수사(본명 자크 페스트르·82·떼제공동체)의 그림은 떼제 기도를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특별한 표정 없이 여백으로 남겨진 인물 모습에서 보여지듯 그의 그림은 색채와 몸짓이 말을 건넨다. 떼제공동체 창립자 로제 수사가 강조했던 ‘인자한 마음과 단순 소박함’의 의미가 전해져 온다. 자유로운 묵상거리가 던져진 느낌이다.
‘떼제공동체 화가 수사’로 잘 알려진 그가 30년 가까운 한국 생활을 뒤로 하고 떼제로 돌아간다. 5월 14~23일 서울 명동 전진상 영성센터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한국 신자들에게 그림으로 나누는 작별 인사다.
특별한 주제를 정하기보다 자비의 희년을 기념하면서 ‘성탄’ ‘부활’ ‘십자가’ 등 성경과 신앙 안에서 마주한 묵상 소재들이 소개된다. 새로 작업한 그림들과 이전 작품들이 망라될 예정이다.
“실제적으로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전시회겠지만, 마지막이라고는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결산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마지막이라고 하면 웬지 슬프잖아요.”
인터뷰 내내 잔잔한 웃음, 평안함이 가득한 얼굴에서 오랜 수도생활을 거친 노(老)수사의 연륜이 묻어났다. 1966년 떼제공동체에 입회한 실바노 수사는 1987년 한국에 왔다. 오는 7월이 되면 83세가 된다는 실바노 수사는 75세까지 수원대학교에서 불어 회화를 가르쳤다. 공동체 일과 강의를 병행하면서 창작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던 그는 개인전과 이웃 종교인과의 연합전 등을 열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고 특별한 미술 공부나 기법 등도 배운 적이 없지만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그림을 가까이 했다.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할아버지의 성경이야기들이 습작의 소재가 됐다.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작업 과정에서 중요한 영감으로 작용한다. ‘마음으로 읽고 이해하는 그림’으로 자신의 작업을 평가한 실바노 수사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붉은색 등 강렬한 색상에 자주 다가가는 것 같다”고 했다. 농익어 터져 나오는 하느님 사랑의 느낌을 표현할 때 더욱 그렇다.
“제게 그림은 내적이고 아주 개인적인 기도입니다. 그림을 보고 평론가적인 입장에서 평가하기 보다는 ‘당신을 이해해요’ 라고 말해줄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