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노라 수녀가 서원 50주년 금경축 축하식에서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편찮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통해서, 그리고 가정간호 활동을 통해서 한국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됐습니다. 더 깊은 나눔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으니, 그것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습니까? 감사할 따름이지요, 하하하!”
눈도, 코도, 입도, 얼굴도 둥글둥글하고 시원시원한 아일랜드 출신의 한 수녀가 큰 목청과 큰 웃음으로 말한다. 함께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따라 웃으며 박수를 보낸다. “감사할 이는 우리인데, 오히려 수녀님께서 따뜻한 감사를 우리에게 주신다”면서.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자그마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노인 요양원 ‘성 골롬반의 집’ 원장인 노라 와이즈만, 한국 이름 하 노라 수녀의 서원 50주년 금경축을 맞아 미사와 소박한 축하식이 마련됐다. 이날을 끝으로 노라 수녀는 오랫동안 맡아온 원장직도 물러난다.
그는 1946년에 태어나 1964년 성 골롬반 외방 선교수녀회에 입회, 1966년 첫 서원을 했다. 한국 땅에 발을 디딘 것이 1973년이니 벌써 43년이 됐다. 이듬해부터 목포 성 골롬반병원에서 일했고, 지금은 문을 닫은 춘천 성 골롬반 의원에서 가정호스피스도 시작했다. 2004년엔 거두리에 성 골롬반의 집을 마련한 후 지금까지 힘들고 지친 병자들을 위해서 평생을 바쳤다.
노라 수녀의 일과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 기도와 빵굽기로 시작된다. 몇 판씩 구워낸 빵과 과자는 하루 동안 이 사람 저 사람을 챙겨 먹이는데 쓰인다. 그리고 종일 이어지는 병자 방문. 방마다 찾아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98명의 어르신들 한 명도 빼지 않고 문안을 드린다. 매일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대한다. 항상 웃음을 몰고 다니기에 이곳이 죽음을 준비하는 곳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날 미사 때 강론을 한 김윤미 소피아 수녀(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아시아지부 한국대표)는 노라 수녀를 환한 미소, 제빵, 열린 방문, 이 세 가지로 요약한다.
“잘 때와 상담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열려 있는 방문처럼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빵을 만들고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환대하는 모습은 말과 혀가 아니라 몸과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줍니다.”
1996년부터 20년 동안 노라 수녀와 함께 가정간호를 해왔다는 이윤숙(율리아) 의료팀장은 그의 검소함과 겸손, 긍정의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래고 낡은 옷들, 심지어 스타킹도 몇 번씩 꿰매어 신고, 검정 비닐봉투까지 씻어서 다시 쓰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 습관을 배운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노라 수녀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병자들에 대한 사랑이다. 아무리 먼 길을 다녀왔어도, 병자가 통증을 호소하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다녀온 지 1시간도 안 된 곳이라도 다시 차를 돌려간다.
긍정과 기쁨으로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그도 돌보던 분이 세상을 떠난 후엔 힘들어한다. 이 의료팀장은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는 노라 수녀이지만, 아끼던 환자가 세상을 떠나면 정말 힘들어 하신다”고 안쓰러워했다.
수도생활 50년, 낯선 한국 땅에서의 40여 년, 어찌 힘든 일이 없었을까마는 노라 수녀는 ‘너는 이미 내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2코린 12,9)라는 자신의 모토처럼, 필요한 모든 은총을 이미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고 말한다.
원장직은 다른 수녀에게 물려주지만 그는 두어 달 동안 쉰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노라 수녀의 또 한 가지 바람은, 고통 받는 이들을 돌보는 소중한 직분을 이어갈 성소자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성소문의 010- 5033 -9302, www.columba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