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영화는 시대를 대변한다고 한다. 지난해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유럽의 난민 문제를 다룬 프랑스 영화 ‘디판’(Dheepan)이 최고 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데 이어 2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시상식 중 역시 난민 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파이어 앳 시’(Fire at Sea)가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서 두 영화가 최고상을 받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난민이 최대 규모로 늘어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강제이주를 하거나 난민 생활을 하는 이들은 6000만여 명에 달한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3년 사이 40% 정도가 폭증했다.
‘디판’을 비롯해 2011년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르 아브르’와 지난해 개봉한 ‘뷰티풀 라이’ 등도 난민과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삼은 영화다.
‘이민의 날’을 맞아 주목할 만한 난민 소재 영화들을 소개한다.
아프리카 가봉의 난민소년을 돕는 프랑스 이웃의 이야기 ‘르 아브르’. 찬란 제공
■ 르 아브르(Le havre·2011)
난민소년 돕는 이웃들 이야기
프랑스 서북부 항구도시 르 아브르를 배경으로, 아프리카 가봉에서 온 불법 난민소년 ‘이드리사’를 도우려는 ‘마르셀’과 그와 함께 도움을 펼치는 따뜻한 이웃들 이야기다. 핀란드 영화계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특유의 절제되고 담백한 연출 속에 눈물과 웃음이 어우러지는 영화다.
가난한 구두닦이의 삶을 사는 마르셀은 이드리사를 런던의 엄마에게 안전하게 보내려 쌈지돈을 털어내고 시간을 쪼갠다. 이웃들도 모른 척 하지 않고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이드리사 돕기에 동참한다. 가진 바를 나누며 궁지에 몰린 어려운 이를 돕는 마르셀과 주민들 모습이 자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선함’이 기적을 일으키는, 쉽고 훈훈한 동화 같은 스토리다. 유럽 사회가 직면한 난민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면서도 ‘함께 하는 세상’의 의미를 던져준다.
앙드레 월름스, 카티 오우티넨 등 출연. 상영시간 93분.
수단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어린이들을 소재로 한 ‘뷰티풀 라이’.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 뷰티풀 라이(The Good Lie·2014)
살기 위해 국경넘은 소년들
수단 내전으로 가족을 잃고 케냐 난민캠프에 도착한 4명의 아이들이 13년 후 미국 사회에 재정착하는 과정이 큰 줄거리다. 내전 중 반군에게 ‘총알받이’로 잡히거나 아랍계 군인들을 피해 국경을 넘은 아이들을 칭하는 ‘잃어버린 아이들’을 영화화했다.
실제로 소년병으로 활동했던 이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 화제를 낳기도 했던 이 영화는 난민 출신 이방인이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는 안쓰러운 노력들이 눈물겹게 그려진다.
척박한 수단이 그리워질 만큼 정체성과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는 이들을 지켜준 것은 캐리를 비롯해서 주변 이웃들의 동료애와 형제애다.
이 땅에 정착하고 있는 난민과 이주민들에게 ‘이웃’으로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리즈 위더스푼, 아놀드 오셍 등 출연. 상영시간 110분.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프랑스영화 ‘디판’.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 디판(Dheepan·2015)
혹독한 삶에서 싹트는 사랑
스리랑카 소수민족 반군 출신 시바다산은 ‘디판’이라는 이름으로 프랑스 망명을 시도한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일면식도 없는 여자 알리니와 9살짜리 고아 일라얄과 가짜 가족이 된다. 파리 외곽에 자리 잡게 된 이들. 건물관리인으로,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정착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갱단이 자리 잡고 있는 그 지역은 또 다른 싸움터다. 전쟁을 피해 지구 반대편을 찾아왔으나 역시 총성이 오간다.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이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이들은 없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혹독한 상황 속에서 생면부지 관계로 만나 살아남으려 애쓰다가 점차 서로를 진정한 ‘가정’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이 가족을 통해 인간 존엄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디판 역을 맡은 주인공 제수타산은 타밀 반군 소년병 출신이다.
자크 오디아르, 에포닌 모멘큐 등 출연. 상영시간 114분.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