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고 성경도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내가 심판받는다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좀 민감해졌다. 왜냐하면 나는 매일 심판받고 있었고, 때때로 과거까지도 들춰내 재심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괴로운 것은 내가 죽음에 직면할 때는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재심 청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누가 검찰이 되고 판사가 되냐고? 베드로 사도나 미카엘 천사가 검찰이 되고 하느님이나 예수님께서 판사가 되시어 모든 천사들과 성인들 앞에서 나를 심판하실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우리 안에, 그리고 사회 속에 그런 심판 장치를 해 놓으셨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경고 장치도 해 놓으셨고 처벌 장치까지 갖춰 놓으셨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심판하게 만드셨고 그래도 안 되면,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심판하고 처벌하게 하셨다. 그런데도 잘못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면? 그야 이미 세상에서 파멸되지 않겠는가?
이런 심판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있는 것인가? 물론 있다. 하느님은 지혜로우시고 선하시기 때문에 모든 장치를 인간 안에 완벽하게 해 놓으셨다. 어떻게 하면 될까? 매일의 심판은 매일 잘못을 인정하고 그 밤에 생각과 마음을 바로 잡으면 된다. 그러면 편안히 잠들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다음 날 만나 “어제 정말 미안했어. 내 감정이 나를 혼란에 빠트렸나봐. 진심은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것이야”하고 진실한 속마음을 털어놓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속죄를 위해 선업을 쌓으면 되지 않겠는가?
한 청년이 마음의 괴로움을 해소하고자 찾아왔다. 중학교 때 학생회 연극 판매 티켓 5장을 배정받았는데 팔기는 팔았다. 그러나 그 대금을 반납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뒤로 학생회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내 그것에 가책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은 뒤에도 그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학생회는 이미 없어졌다. 그는 이 일을 해소하기 위해 내게 찾아왔다. 나는 그의 양심을 오히려 칭찬해줬다. 그리고 하고 싶다면 좋은 일로 갚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100배의 돈을 선행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청년은 그로써 양심의 때를 청소할 수 있었다.
자기 내면을 바로 잡는 길, 다른 이를 속이거나 해치지 않고 정당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길이 매일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신앙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은 하느님의 의를 거스르는 것이며 예수님의 죽으심에 역행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헐벗은 이를 외면하고, 병든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면 모든 천사와 성인들 앞에서 심판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잘못하는 것이 심판거리요 이웃에게 잘 하는 것이 축복거리임을 알아야 한다.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요 천국 가는 길인 셈이다. 영성을 바르고 좋게 한다면 심판받을 일도 없는 것이다.
하재별 신부 (원로사목자·사랑과 평화 생활실천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