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가톨릭문학상 수상자] 신인상 박승민 시인
“시를 통해 자본논리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추구”
아들 떠나보낸 개인적 슬픔
사회적 아픔과 연결해 창작
‘작가회의’ 소속 사회활동 주도
“좋은 작품 써서 나누는 것이
더 나은 인간 삶 위한 작가 몫”
박승민(율리아노) 시인은 1964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고, 숭실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2007년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를 냈다. 현 대구경북 작가회의 부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 수상 소식을 듣자 ‘우리 그레고리오가 ‘아빠’ 하고 또 한 번 부르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울 때 교회에 큰 신세를 졌는데요, 저에게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은 가장 아플 때 만난 하느님과 우리 아들 그레고리오를 새로 기억하게 하는 상입니다.”
박승민(율리아노)씨는 가톨릭신문사가 올해 제정한 한국가톨릭문학상 신인상 첫 수상자다. 그는 올 1월에 선보인 시집 「슬픔을 말리다」로 이번 상을 받게 됐다.
수상작 「슬픔을 말리다」에는 개인적 아픔을 사회적, 보편적 아픔과 연결해 창작한 시작들을 담아냈다. ‘작은 것’을 ‘큰 것’과 연결시키는 노력을 바로 이 시집에 녹여낸 것이다. 박승민 시인은 한 예로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그 마르지 않는 눈물의 고통을 짐작한다. 박 시인도 10여 년 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다. 치료제인 ‘로렌조 오일’로 더 잘 알려진 희귀난치병 ALD(부신백질이영양증)였다.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했고, 인간으로서는 더 할 수 없는 한계에 맞닥뜨려서는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로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까. ‘아이들에게 배에서 탈출하란 단 한 마디만 해줬어도 대부분 살아나올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만 하면 억장이 무너지는 이들, 살릴 수 있었는데 못 살렸다는 생각만 하면 눈물이 터지는 이들의 슬픔을 ‘말리는’데 함께하고자 하는 뜻을 시에 실었다. ‘말 말 말’, ‘돈 돈 돈’만 하는 물질만능주의를 넘어서 인간을 보고자 했다.
아들을 잃고 그의 삶은 새로운 옷을 입었다. 글만 남기고 움켜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외적으로는 문명의 이기를 남용하기 보다는 조금 불편하지만 에너지도 줄이고 소박하게 사는 삶을 택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가질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다들 똑똑한 척 살아가지만,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됐습니까?”
현대인의 삶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 몇몇 사람들은 그야말로 죽자고 써대도 다 못쓸 만큼 많은 돈을 독식하고 있는 반면 굶주림과 고통에 끙끙대는 이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박 시인은 “내 자식들도 못 지키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못 지키면서 수많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슈퍼컴퓨터를 개발해 우주비행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도 못하는 현실”이라고 한숨을 쉰다.
“인간생명은 어떤 기준으로도 따질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지켜야 하는 최고의 가치인데….”
박 시인은 “시가 바로 그 자본의 논리를 계속 벗어나는 삶을, 더 넓고 자유로운 삶과 세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박 시인은 ‘허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가 말하는 허무는 ‘인간의 소유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자꾸 소유하려다 보니 온갖 악행들과 부작용들이 나온다고 말한다. 수많은 하느님 말씀 중에서도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면 다른 것들도 이른바 도미노처럼 지켜진다고 강조한다.
시를 통해 박 시인이 추구하는 것은 ‘자유로움’이다. 현대인들에겐 자유가 불안감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당장 수도가 끊어져 물만 안 나와도 밥도 못해먹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는 삶, 수도 파이프 하나에 전전긍긍하는 삶이 과연 자유로울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보다 돈만 생각하는데 가속도를 붙여간다. 그는 시를 통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자본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목소리와 그 희망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박 시인은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문인단체인 ‘작가회의’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민족민중문학을 이루는 일에 뜻을 함께 해왔다. 하지만 작가들이 1980년대 사회적 활동들을 주도하다 보니, 문학적인 면에서는 빈곤해지는 것을 체험했다.
박 시인은 “구호가 시가 될 수는 없다”면서 “작가는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풍성한 작품세계를 통해 사람과 사회의 변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전한다. 보다 나은 인간 삶을 위해 좋은 작품을 써서 나누는 것이 바로 작가의 몫이라는 말이다.
특히 박 시인은 시작을 통해 가장 가까운 것에서부터 가장 먼 곳까지 같이 보는 삶을 추구한다. 이를 테면 꽃 한 송이가 흔들리는 가장 가까운 현상을 볼 수 있는 반면, 그 꽃의 내면과 근원을 바라보는 가장 먼 곳을 함께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 살지만 현실 너머의 성스러운 것을 찾아내는 눈이 시인에게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먼 곳에 있는 것을 우리들 곁에 갖다 놓는 것이 바로 시이고, 시인의 몫입니다. 그래야 인간의 시야가 좀 넓어지고 삶의 의미를 제대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 「슬픔을 말리다」는…
140쪽/8000원/실천문학
2011년 「지붕의 등뼈」 이후 5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정말 슬픔은 마를 수 있을까? 시집의 제목 ‘슬픔을 말리다’는 이전의 그의 시들이 내보였던 절망과 슬픔으로부터 돌아선 능동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첫 시집 ‘지붕의 등뼈’에서 그의 시는 슬픔의 정서와 언어로, 상실의 비애로 휘감겨 있었다. 이러한 시인의 슬픔과 상실의 비애는 타인의 삶까지도 슬픔에 노출시켰다.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은 그런 슬픔을 말리고 있다. 젖은 슬픔을 말린다. 스스로의 슬픔도 말릴 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슬픔도 말리고자 한다. 그 슬픔에 빠져드는 누군가를 ‘말리고’ 막아서려 한다. 그런 변화에는 세월호, “지도 수심에 거꾸로 박힌 무덤들”의 표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체제 하에서는 모두가 난민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진도 앞바다에는 거꾸로 박힌 무덤들이 생겨났고, 바다조차 ‘거대한 유골 안치소’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난민 의식’을 공유하는 순간, 그러한 의식의 공유로 인해 삶의 연대가 생겨나는 순간, 시인은 초월적 상생의 미래를 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여전히 슬픔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근원적이고, 시인은 ‘일종의 허무’로 들어선다. 그 허무는 ‘덧없음’이나 ‘무위자연’의 허무를 지향하진 않는다. 그에게 허무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 다양한 삶들을 포용한다는 말이다. 시인에게 허무는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것이기도, 어떻게든 사람을 살게 하는 힘으로도 제시된다. 그런 이유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허무하게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 심사평
제 19회 가톨릭문학상 신인상 후보에 오른 시집은 세 권이었다.
세 권의 시집을 차근차근 읽었다. 세 권 다 개성은 달랐지만 독창적이었고, 상당한 수준에 이른 수작들이었다.
그중에서 박승민 시인의 시집 「슬픔을 말리다」를 수상작으로 선택한데는, 박승민 시인의 시가 신인다운 패기나 특별히 새로워서가 아니라, 자연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측은지심이 담겨있어 그 감동의 울림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약한 것, 모자란 것, 소외된 것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함께하려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인의 심성에는 숙연함마저 느끼게 했다.
집요하게 자연과 사회를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감정을 억제한 표현들에서는, 시는 지식이나 머리를 짜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감동한 것을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것 같아 반갑고 기쁘고 고마웠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이웃으로 생각하는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기대해 본다. 슬픔을 말리는 시인이니 이미 그런 정신의 소유자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