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결혼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은 325항이라는 방대한 양 만큼 현대사회의 가정과 여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사랑의 기쁨」은 사람들의 현실 문제를 이론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을 감안하여 해결의 방향을 밝혀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각자의 상황과 자신의 개별적인 필요에 가장 적합한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 자신에게 유익한 내용을 식별할 것을 당부했다.
지난 호에는 「사랑의 기쁨」의 서문과 성경에서 묘사된 가정생활과 오늘날 가정의 현실과 도전에 대해 알아봤다. 이번호에서는 교황이 권고문을 통해 제시하고자 하는 가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부부의 사랑, 다양한 관계와 열매를 맺는 가정의 사랑, 이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관점들을 풀어본다.
■ 성소로서의 가정
교황은 「사랑의 기쁨」에서 결혼과 가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환기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모두 30개 항으로 구성된 제3장 ‘그리스도를 통해 보는 가정의 성소’는 복음의 관점으로 보는 가정의 성소를 축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랑의 기쁨」은 무엇보다 결혼의 성사적 본질인 불가해소성과 생명 전달, 자녀 교육에 대해 강조한다.
교황은 이 장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기쁨과 희망」(Gaudiumet Spes), 바오로 6세 교황의 회칙 「인간생명」(Humanae Vitae),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를 폭 넓게 인용했다.
「사랑의 기쁨」을 통해 교황은 현대 가정의 ‘불완전한 상황’에 대해 보다 폭넓은 관점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교황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말씀의 씨앗’을 식별하기 위해서는(「선교 교령」(Ad Gentes 11항 참조) 이 문화권에서 의미하는 결혼과 가정의 실제를 확인해야 한다”면서 “타종교의 전통에서도 비록 가끔 모호하긴 해도 결혼에 관한 다양한 긍정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사랑의 기쁨」 77항)”고 밝혔다.
이러한 성찰에 따라 교황은 2015년 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최종보고서의 내용들을 대폭 인용해 ‘상처입은 가정’에 대한 사목자들의 배려를 요청했다. 특히“사목자들은 진실을 알기 위하여 상황을 조심스럽게 식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가정 공동체」 84항)는 일반론적 원칙을 먼저 제시했다.
가정의 파괴에 있어서도 사안에 따라 부부간의 책임 정도가 다르고 복잡하다는 것을 고려해 사목자들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어 사목자들은 필요에 따라 어려움에 처한 부부에게 귀를 기울여 상황에 따라 이들이 어떠한 경험을 하고 어떻게 괴로움을 견뎌나가는지 알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사랑의 기쁨」 79항)
지난해 12월 21일, 필리핀 마카티 시티의 한 성당에서 열린 합동 결혼식에서 신혼부부들이 주례사제의 강론을 경청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 결혼 안의 사랑
「사랑의 기쁨」은 바오로 사도의 코린토 1서(13,4-7)에서 묘사한 ‘결혼 안의 사랑’에 대해서도 말한다.
교황은 “혼인성사는 그 무엇보다도 부부 간에 더욱 완벽하게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하느님의 은총”이라면서 “이를 통해 부부는 신의를 지키고 서로에게 더욱 희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부부와 자녀의 일상을 통해 사랑을 경험하고 이를 키울 수 있다면서 부부들에게 코린토 1서의 ‘사랑의 찬가’ 부분을 깊이 묵상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대입해 볼 것을 권한다. 교황은 이 ‘사랑의 찬가’가 인간의 사랑을 아주 구체적인 용어로 조심스럽게 그리고 부드럽게 기술했다고 평가하고, 심리학적 성찰 정도도 상당히 높다고 칭송했다. 이러한 심리학적 통찰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배우자의 감정 세계에 빠져들도록 한다.
하지만 교황은 오늘날 부부들이 사랑하면서 겪는 풍부하고도 인지적인 상황들에 대해 이상적인 기준만을 들이대지 말 것을 당부한다. 교황은 “한계가 있는 두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와 같은 완벽한 결합을 요구해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면서 “결혼은 ‘역동적인 과정’을 거치고, 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을 점진적 또 진보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이기 때문(「사랑의 기쁨」 122항)”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교황은 부부간의 사랑은 그 본성상 즐거움과 싸움, 긴장과 휴식, 고통과 위안, 만족과 갈망, 성가심과 기쁨 등 모든 것을 망라하는 영원한 결합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강조한다.(「사랑의 기쁨」 123항)
교황은 이 장의 마지막을 “사랑의 변화”라는 의미심장한 묵상으로 마무리한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부부 사이의 밀접하고도 독점적인 관계가 40년, 50년 심지어 60년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고려한 조언이다. 교황은 이에 따라 “결혼 당시의 사랑이 계속해서 갱신되어야 한다”(「사랑의 기쁨」 163항)고 전한다.
아울러 교황은 부부의 육체적 외모가 변함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이끌림도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성욕이 단란함과 상호성에 대한 욕망으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부가 일생동안 똑같이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보장은 없다”면서도 “만일 한 부부가 공통의 영속적인 인생 목표를 갖고 있다면, 이들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풍요로운 친밀함을 즐길 수 있다”(「사랑의 기쁨」 116항)고 덧붙였다.
■ 결실을 맺는 사랑
「사랑의 기쁨」 제5장에서는 사랑의 열매와 출산에 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생명과 임신, 모성애와 부성애에 관한 심오한 영적, 정신적 태도에 관해 밝힌 장이다.
이 장에서는 불임부부에 입양을 장려하는 한편 가정 안의 사랑을 통해 ‘만남의 문화’를 증진하도록 당부했다. 이어 가정의 범위를 서로 지지하는 친구와 타가정으로 확대해, 서로 어려움과 사회적 책임, 신앙을 함께 나눌 것을 요청했다.
혼인성사의 영성은 깊은 ‘사회적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사랑의 기쁨」 187항) 이러한 사회적 차원 안에서 교황은 특별히 청년과 노인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향후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미리 훈련하는 의미에서 가정 내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의 중요성도 언급한다. 교황은 “은총에 대한 열린 마음 없이 그저 원칙과 생명윤리, 도덕적 잣대를 제시하는 것으로 가정이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사랑의 기쁨」 37항)
■ 가정에 대한 사목적 관점들
교황은 「사랑의 기쁨」에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가정이 견고하게 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사목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황은 두 번의 주교시노드 최종보고서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및 자신의 교리교육 내용을 폭넓게 인용했다. 특히 교황은 가정이 복음화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정이 세상을 복음화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교황은 사목자들이 현대의 가정이 겪는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는데 필요한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사랑의 기쁨」 202항)하고, 각 가정이 사목활동에 더욱 활발히 참여하길 당부한다.(「사랑의기쁨」 203항) 특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동방교회 사제들의 폭넓은 경험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교황은 예비부부들의 결혼 준비 과정과 책임 있는 부모에 관한 교육 등 신혼 초기에 교회가 이들을 동반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가정이 겪는 복잡한 상황과 위기 등에 관해서도 “가정이 겪는 각각의 위기는 우리 교회에게 가르침을 준다”면서 “우리는 마음의 귀로 어떻게 이러한 가정의 어려움을 들을 것인지 배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사랑의 기쁨」 232항) 이번 권고를 통해 가출, 별거, 이혼 등으로 상처 받은 가정에 대한 ‘교회의 동반’도 강조했다.
또한 교황은 이번 권고를 통해 자신이 추진한 결혼무효 절차 개혁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특별히 이혼 가정 안에서 자녀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관심을 보인 교황은 “이혼은 악이며 이혼 증가는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가정에 관한 교회 사목의 가장 중대한 임무는 바로 가정 안에서 사랑을 키우고, 이들의 상처를 보듬는 한편 이혼의 증가를 막는 것”이라고 전했다. (「사랑의 기쁨」 246항)
한편 교황은 「사랑의 기쁨」에서 가톨릭 신자와 그리스도교 타 종파 신자 사이의 결혼, 가톨릭 신자와 타종교인 사이의 혼종혼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해 주교시노드에서 논란이 있었던 동성애자 문제 관해서는 이들은 존중 받아야 하고 이들에 대한 불의한 차별이나 억압, 폭력은 없어야 한다는 교회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맺는 것이며, 동성 결합은 그리스도인 혼인과 동등한 차원의 것이 될 수 없다”(「사랑의 기쁨」 251항 참조)고 선을 그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