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수원대리구 세류동본당
작은형제회, 교구 진출하며 본당 설립
스페인 은인·교황청 성금 등 모아 완공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 구심점 역할도
세류동성당.
우리 교구는 타 교구에 비해 관할 수도회가 많은 교구 중 하나다. 대부분의 본당들은 교구의 사목적 정책이나 신자들의 요청으로 설립되지만, 수도회의 진출로 설립된 본당들도 있다. 수원대리구 세류동본당(주임 류이구 신부)이 바로 그런 본당이다.
1966년 7월 작은형제회는 교구 진출을 위해 교구와 계약을 맺었다. 작은형제회 측은 세류동에 수도원과 함께 성당을 지을 계획을 당시 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에게 전했고, 윤 대주교는 그 요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작은형제회는 고등동본당에 보좌신부를 파견하고, 세류동본당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68년 9월 9일 사제관 겸 수도원과 성당이 착공됐고, 이어 같은 해 10월 1일 고등동본당에서 세류동본당이 분리됐다.
신자들은 성당 설립을 위해 꾸준히 기금을 모았지만, 형편이 어려워 많은 기금을 모으기 어려웠다. 이에 스페인 출신인 작은형제회 젠도퀴즈 신부는 “앞날을 내다보고 큰 성전을 지으라”면서 스페인의 은인들과 교황청에서 성금을 모금해 새 성당 건축기금으로 내놨다.
그의 선견지명 덕분인지 본당 신자 수는 날로 늘어갔다. 설립 당시 1600여 명이었던 신자는, 1970년 고색동본당, 1981년 매교동본당을 분당하면서도 20년도 채 되지 않아 2배에 달하는 3200여 명으로 증가했다.
수도회가 설립한 곳인 만큼, 본당은 수도회의 영성인 프란치스코 영성과 함께 신앙을 다져나갔다.
본당 설립 초기부터 수도원에 머무는 사제와 수사가 본당 교리교육을 돕는 등 본당과 함께해왔다. 1975년에는 본당 신자들이 재속 프란치스코회를 창립하고 총회도 열었다.
본당은, 교회가 사회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고통 받는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당은 ‘사랑의 대 바자’ 혹은 ‘자선의 날 행사’ 등을 통해 자선 활동에도 적극 나섰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왔다.
이런 맥락에서 본당은 교구 내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활동의 구심점이기도 했다. 1969년 설립된 본당 가톨릭노동청년회는 본당이 주최하는 세미나, 피정 등에 다른 본당 회원들을 초대하는 등 크게 활성화됐다. 1980년대 후반에는 각 본당의 냉대로 가톨릭노동청년회의 활동이 무산됐지만, 세류동본당은 근로청소년들을 위한 강의나 봉사활동 등을 꾸준히 이어와 1983년에는 설립 25주년 행사를 열었다.
1996년 본당은 현재의 성당을 봉헌하고 지역의 내·외적인 복음화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현재 본당은 관할구역 내의 재개발로 신자 수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재개발 공사를 마치면 다시 활발히 복음화 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