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 한 것 없어요. 그저 예수님 복음 말씀대로 사람들을 돕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간호사로서 고통 받는 환자들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소록도 할매’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82·그리스도왕 시녀회 재속회)가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긴장이 됐는지 목소리는 떨고 있었고, 오래 한국을 떠나 있던 탓에 말투도 어색했다. 하지만 한센인을 바라보던 다정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마리안느 수녀는 지난 1962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소록도에 들어와 43년 동안 환자를 보살폈다. 그리곤 2005년 편지 한 장만 남기고 고향 오스트리아로 훌쩍 떠났다. 늙고 병든 자신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짐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랬던 마리안느 수녀가 소록도를 다시 찾았다. 광주대교구와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이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5월 17일) 기념행사에 참석해달라고 간곡하게 초청한 결과다. 마리안느의 단짝 마가렛 피사렉 수녀는 건강이 좋지 못해 같이 오지 못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소록도병원 100주년과 복합문화센터 개관을 기념해 4월 26일 병원 측에서 마련한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난 43년간의 소회를 털어놨다.
수녀는 소록도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병이 나은 환자들이 가족의 품에 다시 안겼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환자들은 이곳에 오기 위해 가족과 헤어져야만 했고, 당시에는 편견들이 많아 가족과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 나은 환자들을 가족이 받아주고 안아줬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다 나았는데도 집에 못가는 사람이 있었을 땐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마리안느 수녀가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신앙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안느 수녀는 “예수님 복음 따라 기도했고, 옆의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서 환자들을 돌볼 수 있었다”면서 “하루하루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수 있었고, 환자와 병원 직원, 교우 구분 없이 모두 친구로서 살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걱정 없이 지내던 2003년 마리안느 수녀에게 대장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오스트리아에서 세 번의 수술을 받고 돌아온 마리안느 수녀에겐 더 이상 환자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하루 살다보니 43년이 흘렀고 나이도 70이 넘어 일도 못하는 상황이었다”면서 “환자들을 돌보지 못하니 조용히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안느 수녀는 현재 오스트리아의 고향마을 마트레이에서 지내고 있다. 천식을 앓고 있어 많은 일은 할 수 없고 일주일에 세 번 20㎞ 떨어진 인스부르크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마가렛 수녀가 있는 요양원을 방문한다.
마리안느 수녀는 5월 17일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 행사를 마치고 6월 초 다시 오스트리아로 돌아갈 예정이다. 한센인의 친구로 소록도를 찾은 마리안느 수녀는 역시 소록도 사람들에게 친구로 남고 싶다. 그리고 거의 반평생 소록도 삶은 그녀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소록도에서 생활이 행복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네, 행복했습니다. 이 만큼, 하늘 만큼이요”라며 두 팔로 큰 원을 그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