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청 ‘비움의 십자가’ 만든 이춘만 작가
“6·25 5·18 세월호… 모두의 아픔 위로합니다”
비어있는 곳에 팔 벌리면
누구나 십자가 되는 구조
‘하느님께 고통 의탁’ 의미
4월 30일 광주대교구청에서 축복된 ‘비움의 십자가’를 제작한 이춘만 작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50년간 그리스도교 미술을 제작해 왔는데, ‘비움의 십자가’ 작업은 그간의 시간들을 다 쏟아 넣은 느낌입니다. 조각가로서의 제 모든 역량을 결집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월 30일 광주대교구청에서 축복식을 가진 ‘비움의 십자가’ 작가 이춘만(크리스티나·75·서울 수유동본당)씨. 작가의 스무 번째 개인 조각전이면서 다섯 번째 성 미술전이기도 한 이 자리를 그는 10여 년 전부터 기도하며 준비했다. 65세가 되던 즈음에 그간의 성미술 활동을 정리하는 작업을 떠올렸고, ‘비움의 십자가’는 그 첫머리에 떠올린 아이템이었다. 특별히 목포 출신으로서 ‘고향 교구에 남기고픈 마지막 작품’ 이라는 각오가 있었다.
높이 8m, 폭 12m의 돌로 만든 25개 제작물을 쌓아올린 형태의 고부조 작업. 그 규모만큼 어려움이 상당했다. 일반적인 작업은 먼저 흙으로 원형을 만든 후, 이 과정이 팔순을 바라보는 여성에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또 흙으로 빚어진 것을 돌이라는 또 다른 재료 속에서 재탄생시키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그는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하느님께 모든 걸 의탁했다”고 했다.
비움의 십자가는 이 작가가 2000년 제작한 서울 절두산성지의 순교자현양비와 맥을 같이한다. ‘모든 순교자들을 위로한다’는 의미와 함께 6·25 전쟁을 비롯해서 5·18 광주 민주화항쟁, 세월호 희생자들 모두를 기억해야 할 ‘아픔’의 범주에 넣고 있다.
“제작의 전 과정이 ‘기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의 내용과 ‘신앙’ ‘구원’ ‘천상’에 관한 것들을 형상화시키고 이를 작품에 스며들게 하는 과정에서 ‘함께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계속 흘러 나왔습니다.”
광주대교구와의 협의 후 2014년 드로잉을 시작으로 작품 제작에 돌입한 이 작가는 돌 작업에만 8개월여의 시간을 쏟았다.
그는 이번 십자가의 가장 큰 특징을 ‘비움의 십자가’라는 이름처럼, 기존의 십자가 구조물과는 다르게 비어있는 부분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어린아이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비워진 십자가 앞에서 키에 맞춰 팔을 벌리면 자기 스스로 십자가 형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손 내밀고 있는 성모상은 누구든지 손을 얹기만 해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의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는 “이 십자가가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지친 삶을 위로 받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기대를 표명했다.
이춘만 작가는 1962년 서울대를 졸업한 이후 브론즈 조각뿐 아니라 목각 테라코타 세라믹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자신만의 조각 세계를 구축해 왔다. 특별히 주문제작 방식 교회미술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최초로 성 미술 개인전을 네 차례나 개최했던 점은 한국교회 안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으로 볼 수 있다.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흉상을 비롯해서 국내의 유수 성지와 성당에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