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쉼터] 충남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을 가다
요양시설 가란 말에 서러웠던 할머니
“이젠 집보다 여기 병원이 좋아, 好好”
사진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 제공
“아이고 바깥 공기 쐬니 아주 상쾌하구먼!” “날씨도 좋고 철쭉도 활짝 핀 게 꼭 우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여~”
지난 4월 29일. 서천군립노인요양병원의 어르신들이 처음으로 바깥으로 산책을 나왔다. 담요를 덮고 마스크를 쓴 채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했고, 고작 병원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바깥 구경은 어르신들을 설레게 했다.
치매 환자와 정신질환 환자가 많은 노인병원의 특성상 환자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여의치 않다. 게다가 거동이 불편해 누가 휠체어를 밀어주지 않으면 꼼짝도 못하는 신세의 환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니 그동안 바깥 산책은 언감생심이었다. 병원은 최근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을 ‘산책데이’로 정했다. 날씨도 좋아지고, 병원에만 갇혀 있는 환자들에게 잠시나마 바깥바람을 쐬어주기 위한 배려다. 이날 직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환자들과 함께 첫 산책에 나섰다.
환자들과 함께 산책한 조현정(모니카)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셨고, 우리 직원들도 한 달에 한번이 아니라 더 자주 해드리고 싶다는 의견도 많았다”면서 “휠체어를 밀며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니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만큼 우리의 보람도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 ‘쾌적한’ 요양병원
‘어메니티(amenity)’. 인간이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환경과 접하면서 느끼는 쾌적함이나, 쾌적함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라는 뜻의 단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쾌적한’, ‘기쁜’ 감정을 표현하는 라틴어 ‘아모에니타스(amoenitas)’에서 유래했다.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총원장 맹상학 신부)은 쾌적하고 기쁜 노인복지를 추구한다. 대전교구가 위탁 운영하는 이 종합복지타운은 요양병원, 요양시설, 복지관, 장애인 보호작업장, 장애인종합복지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서천 어메니티 복지마을의 ‘맏형’은 바로 이 서천군립노인요양병원이다. 이 병원에서 내는 수익을 노인과 장애인 복지활동에 활용한다. 하지만 이곳의 요양병원은 최근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비난을 받는 여타 요양병원 및 요양시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일출(젬마·89)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고관절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와중에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마저 교통사고로 다쳐 할 수 없이 병원에 오게 됐다. 할머니는 “여태 고생하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이제 시설에 가라니 서러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면서도 “그런데 여기 와 보니 신부님, 수녀님이 잘 봐주시고, 직원들도 친절하고, 나 같은 노인네 대우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오 할머니는 “이제는 집에 가고 싶지 않다”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과 자매들처럼 사니 좋고, 가족들도 자주 찾아오니 여기가 더 좋다”고 덧붙였다.
■ 모두가 행복한 병원
오 할머니처럼 환자들이 병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병원의 운영 철학에 있다. 가족처럼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 총원장 맹상학 신부의 기본 철학이다. 직원들은 170여 명 되는 환자들을 하나하나 손잡아 주고 눈을 맞춰 내 가족이라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환자들이 사랑받고 존중받는 모두가 행복한 병원을 지향한다.
서천 요양병원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 환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지원이다.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서는 매일미사와 봉성체, 영적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종교 환자들에게도 같은 종교를 가진 환자들을 같은 병실로 배치해 이들이 각자의 신앙 안에서 서로 보듬고 기대며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작년 7월 급작스럽게 하반신이 마비되어 병원에 입원한 최순이(수산나) 할머니는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병실에서 생활한다. 최 할머니는 “성당이 있어 좋다”면서 “제대로 신앙생활 못했는데, 매일 미사도 드릴 수 있으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 인간다운 삶의 마무리를 위해
노인들이 돈벌이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서천군립노인요양병원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부양하고, 이들의 마지막 삶의 자리가 평화롭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병원은 지역사회와 연계해 이들의 외로움을 해소시켜주는 모델을 마련하고 있다. 지역 어린이집 및 초·중·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아이들과 학생들은 매주 주말 병원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준다. 이 외에도 손 마사지, 와플 만들기, 보드게임, 식사 수발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다. 이를 통한 효의식 고취는 덤이다.
맹상학 신부는 “요양병원은 단순 병원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가족적인 것 이상을 해줘 혈연가족들이 덜 미안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가족적인 병원과 지역 가족공동체를 통해 노인들의 질병과 외로움을 치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의 041-950-1008(원무과), 010-7654-3147(행정원장)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