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수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 한 분이 강의실 문을 빼꼼하게 열고 고개를 디밀었습니다.
“여기 노인심리학 수업하는 강의실이 맞나요?” 우리는 의아한 눈으로 동시에 “맞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꾸부정하게 가방을 둘러멘 할아버지는 “교수님! 늦어서 죄송합니다”라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도 노인심리학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이었던 겁니다. 올해 나이가 자그마치 79세나 되었답니다.
일본 에도시대 유학자 사토 잇사이는 수상록에서 “어려서 배우면 커서 이루는 것이 있고, 커서 배우면 늙어도 쇠하지 않으며, 늙어서 배우면 죽어도 썩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평생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글귀입니다.
저의 군생활을 돌아보면 ‘군생활이 곧 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계급별로 받아야 하는 필수교육뿐 아니라 자기계발을 위한 배움이 끝이 없었습니다.
중·소위 때에는 조종사가 되기 위해, 소령 시절에는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 중령 진급 후에는 어학 실력을 높이기 위해, 대령 때는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기 위해 배웠습니다.
지난 가을, 저는 고민 끝에 또 다시 새로운 배움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석사 학위를 받은 지 21년이 지났고, 육체적으로는 암기력과 집중력도 많이 떨어졌지만, 제 내면에서 소리치는 ‘한 번 더해’라는 울림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강의실에서 만난 할아버지를 보니 제가 고민한 것이 왠지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면 왜 배우려 하는가? 배움에 대한 이유야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취업을 위해, 명예를 위해, 자격증을 따기 위해…. 그러나 배움의 궁극적인 목적은 올바른 인격과 품성을 가진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는 평생 배움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저희 본당 신부님께서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신앙서적 50권 읽기’를 추진했습니다. 50권의 책을 읽은 신자들에게는 선물을 주시고 독후감을 주보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신앙서적 50권 읽기’를 계기로 신심서적 읽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습니다. 연이어 가톨릭신문의 ‘신심 서적 33권 읽기’에도 적극 동참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동서고금의 신심 서적을 읽고 하느님의 말씀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으며, 천주교와 관련된 교리 상식의 폭도 넓혔습니다.
공자는 ‘논어’ 첫머리에서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했습니다. 즉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은가?’라면서 배움의 즐거움에 대해서 역설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입니다.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고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마음 밭을 갈고 가꿀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완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얘야, 젊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라. 그래야 백발이 되어서도 지혜를 찾으리라.”(집회 6,18)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안전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