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매는 한 여름이 지날 무렵부터 갈색으로 완숙한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추수할 수 있어, 가난한 이들의 먹을거리이자 짐승 사료가 되었다. 그러니 고대에는 쥐엄 열매가 가난의 상징이었던 셈. 그러다 위상이 역전된 건, 쥐엄 열매 씨 캐롭이 다이아몬드 무게를 재는 ‘캐럿’(carat)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쥐엄 열매 씨는 예부터 무게를 재는 단위였다. 성경에 나오는 ‘게라’(에제 45,12)가 그 씨를 가리키는 도량형이다. 게라 하나는 0.45~55그램 사이였다고 한다. 씨앗 크기는 수박 씨 두 배 정도로, 완두콩보다는 작다. 그런데 이렇게 보석 단위가 되어 신분(?)이 급상승했으니,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씀(마태 19,30)처럼 그 반전이 눈부시다.
쥐엄나무는 구황작물이자 동물 사료로서 좋은 역할을 해왔지만, 열매는 일흔 해가 지나야만 맺힌다. 탈무드(타아닛 23a)에는 쥐엄나무의 이런 특성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주님께서 시온의 운명을 되돌리실 제 우리는 마치 꿈꾸는 이들 같았네”(시편 126,1)라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한 ‘호니’라는 의인 이야기다. 그는 바빌론으로 유배당한 이스라엘(시온)이 운명을 회복하는 데- 곧 유배에서 풀려나는 데- 일흔 해 걸렸는데(2역대 36,21; 예레 25,12 참조), 어떻게 그동안 잠을 자면서 꿈꾸는 일이 가능한지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쥐엄나무를 심고 있는 남자를 보고, 열매 맺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나 심느냐고 물었다. 그가 70년이라고 대답하자, 호니는 ‘그럼 당신은 70년 더 살 자신이 있으신가 보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나는 내 조상이 심어놓은 쥐엄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소. 이 나무는 내 후손을 위한 거요’라고 대꾸했다. 그 뒤 호니가 그 근처에서 식사를 했는데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그런데 깨어 보니 어떤 남자가 쥐엄 열매를 모으고 있지 않겠나? 그 남자에게 당신이 그 나무를 심은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그의 손자라고 대답했다. 곧, 호니가 자는 동안 일흔 해가 흐른 것이다. 놀란 호니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아무도 그가 호니라고 믿어 주지 않았다. 이에 호니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올린 뒤 쓰러져 죽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이러하다. 유배의 고통에서 벗어나 구원으로 가는 길은 멀어 보여도, 일단 지나고 나면 쏜살같다. 그렇지만 그걸 그냥 건너뛰려면, 호니처럼 평생 보낼 시간과 그 안에 찾아올 수많은 경험, 사연도 희생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만약 시간을 압축해서 그다음 시대로 곧장 간다면, 그때도 여전히 예전의 나로 남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가 저마다 소명을 행할 수 있는 곳은 지금 이 세상이지, 그다음 시대가 아니다. 바로 이 이야기에 70년을 기다려 열매를 내보내는 쥐엄나무가 등장한다.
김명숙(소피아)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에서 구약학 석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루살렘 주재 홀리랜드 대학교에서 구약학과 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