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주변에 모여든 현지 사람들.
아강그리알은 워낙 숲 속 깊숙한 데 있다 보니 차량의 왕래가 극히 드뭅니다. 아강그리알에 자동차가 있는 곳은 성당과 결핵환자 구호기관 단 두 곳. 그나마 정기적으로 쉐벳과 아강그리알을 오가는 차는 본당의 차뿐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운전하는 차를 ‘아부나 아라비아이치’(신부님 차)라고 부릅니다.
딩카 사람들은 귀가 밝아서 1㎞ 떨어진 곳에서도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량의 시동을 걸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쉐벳에 사는 친척을 만나러 간다는 사람, 수확한 수수와 땅콩을 운반하려는 사람들, 분유를 구하러 간다는 엄마들, 각자 쉐벳에 가는 이유는 다르지만 신부님 차를 얻어 타겠다는 목적은 같습니다.
쉐벳까지는 걸어서 5시간 정도 걸립니다. 뙤약볕 밑에서 5시간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차가 최대 9명만 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여드는 사람은 열 명 이상, 때로는 스무 명 이상인데 그 누구도 서로 양보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막무가내로 차 문을 열고 서로 올라타려고 하는 바람에 차 주변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한 달 전에는 쉐벳본당에 있는 신부님들께 갖다 주려고 살아 있는 닭을 두 마리 짐칸에 실었는데, 쉐벳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과 짐에 눌리고 깔려서 납작하게 죽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노약자 위주로 차에 태워 갈 사람들을 선정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한 아이가 수수 자루 세 개를 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미 차 안은 꽉 차 있어서 거절했더니, 아픈 할머니에게 보내야한다면서 지붕에라도 실어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떨어지거나 쏟아지면 어떻게 하냐고 다음 주에 실어 주겠다고도 설득했지만, 상관없다고 부탁하기에 결국 지붕에 묶어서 실었습니다.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운전을 하며 쉐벳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출발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두둑~’ 지붕에 묶어둔 자루에서 수수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흔들리자 허름하고 엉성한 자루가 찢어져서 수수알갱이들이 빠져나왔습니다. 숲길 한복판에서 찢어진 자루를 메울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마음만 급해진 채 쉐벳으로 내달렸습니다.
쉐벳에 도착해서 확인해보니, 맨 밑에 깔린 수수자루 하나는 홀쭉해져 있었습니다. 한 가족이 2주간 먹을 수 있는 양의 수수를 길에다가 흘리면서 온 걸 생각하니 마음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매정하게 보이더라도 그때 확실히 거절했어야 하는 건데….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는 어찌 보면 간단한 사실을, 저는 이처럼 선교지의 삶 안에서 늘 새로운 문제로 마주치고 경험을 통해 반복해서 깨닫곤 합니다. 그나저나 그 아이가 혹시 저에게 찾아온다면 무슨 말을 할까 고민됩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제 잘못도 아닌데 변상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또 다른 고민이네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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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