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위법을 공부하던 때였어요. 대위법을 활용해 3성부로 된 간단한 곡을 숙제로 제출해야 했는데 그 때가 마침 성령 강림 대축일 무렵이었어요. 그래서 대축일에 쓸 수 있는 ‘알렐루야’를 작곡하기로 했지요. 제1독서를 읽으면서 성령으로 가득 찬 사도들이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자(사도 2,4),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사도 2,7-8) 하며 놀라워하고 신기해하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래서 그 감명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전례 안에서 접하는 성가들은 대부분 소프라노가 주선율을 노래하고 다른 성부들은 화음으로 그 소프라노 주선율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형식으로 돼 있습니다. 이를 ‘호모포니’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소리’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대위법에서는 한 성부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주선율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성부가 돌아가면서 주선율을 주고받도록 돼 있습니다. 그리고 주선율을 꾸며주는 대선율 역시 주선율 못지않은 나름의 선율을 갖추고 있어요. 이렇게 하나의 선율이 아니라 여러 선율이 동시에 연주되는 음악의 형태를 ‘폴리포니’라 부릅니다. ‘여러 개의 소리’라는 뜻이지요.
호모포니는 하나의 소리로 연주하니까 가사 전달과 화음 배치가 아주 명확합니다. 그런데 폴리포니는 여러 개의 선율이 동시에 움직이므로 자칫 가사 전달이 모호해지거나 화음 배치가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엄격하게 선율의 구성 법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대위법’입니다. 이 규칙을 지켜야만 여러 선율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성령 강림 대축일의 알렐루야는 전례의 성격상 호모포니보다는 폴리포니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하나의 선율로 밋밋하게 가기보다는 여러 선율이 동시에 움직임으로써 사도들이 여러 언어로 말하는 당시의 상황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이 여러 선율들이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긴밀히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소리로 전달될 때, 비록 사도들이 여러 언어로 말하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하느님의 위업’(사도 2,11)으로 귀결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저는 성령 강림 대축일의 ‘알렐루야’를 대위법을 활용한 3성부로 작곡했습니다. 세 개의 성부가 저마다 고유한 선율을 가지면서 서로 주선율을 주고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선율을 연주할 때는 조금 강하게 연주를 하고 대선율을 연주할 때는 조금 약하게 연주하면서 세 성부가 서로 조화를 맞춰야 합니다. 비단 음악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늘 자신만 주인공이 되려 하지 말고, 때로는 다른 이들도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출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열어주시어 서로 자기 선율을 연주하면서도 또 다른 선율과 한데 어울려 일치된 목소리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 : 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 메리우드대학 음악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로마 교황청립 성음악대학 작곡과를 수료했다. 현재 국악성가연구소 소장과 우리소리합창단(서울) 담당 사제를 맡고 있다.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