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호 신부는 “범어대성당이 ‘대구대교구민의 신앙을 고백하는 상징물로서 예술적 가치를 담아낸 영적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사진 서상덕 기자
대구대교구로부터 100주년 기념 주교좌 범어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이 맡겨졌을 때 조광호 신부(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대표)는 ‘설렘’을 느끼면서도 한편 ‘걱정’이 앞섰다. ‘주어진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 성당이 대구대교구민의 신앙을 고백하는 상징물이라는 의미에서 부담이 컸다. 2011년 공방이 준비되고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면서 ‘범어대성당’ 작품에만 몰입한 은둔 생활이 이어졌다. 2013년 디자인 및 페인팅이 시작됐고, 수정과 보완 작업을 거쳐 220여 점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제대, 감실, 십자가, 성모상, 대성당 외곽문 청동부조 등이 하나씩 완성되어 갔다. 5년여의 여정이었다. 제작과 설치를 마치고 이제 5월 22일 봉헌식을 남겨둔 상태에서 대성당을 지켜보는 조 신부의 소감은 ‘뿌듯함’ 보다는 ‘숙연함’이다.
“당분간은 큰 작업을 할 수 없을 듯합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넣었기에 모든 게 소진된 느낌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올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유리화 벽화 판화 이콘화 조각 등 그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표현의 폭을 넓혀왔던 조 신부는 이번 범어대성당 성미술 제작에서 그러한 미술적 역량을 모두 드러냈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조 신부는 무엇보다 범어대성당이 ‘예술적 가치를 담아낸 영적 공간’이라는 점을 염두에 뒀다. 아울러 이 공간에 ‘빛과 색채의 예술인 스테인드글라스로써 뜻과 의미를 부여하고, 전례적 공간으로서 실용성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데 중심을 모았다.
소성당 ‘프란치스코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제공
“스테인드글라스는 일종의 환경 미술이기 때문에, 건축이 우선된 후 빛과 색채로 공간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각각의 장소에 맞는 작품을 구상하느라 꽤 고생을 했습니다.”
220여 점의 개별 작품으로 이뤄진 스테인드글라스는 전체 면적이 900㎡에 해당,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가 될 전망이다. ‘은하수’(별)를 주제로 모든 스테인드글라스에 은하수가 표현된 것이 특별하다. 조 신부는 은하수를 통해 빛과 색채를 확장시키고 대비시킴으로써 환상적인 공간의 초월성이 조성되도록 배려했다. 그런 이유에서 범어대성당을 ‘은하수 성당’이라고도 불렀다.
“빛과 은하수를 통해 영원에 대한 염원을 담고자 했다”는 조 신부는 또한 “물질문명의 발달로 한편으론 별을 잘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우리 시대에 잃어버린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뜻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스카이블루’로 전체 색조를 조절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현재 세계적으로도 각광 받고 있는 ‘건축 예술 유리’ (Architectural art glass) 작품으로서, 특별히 ‘아트 스테인드글라스 네가티브 레이어’(Art Steind glass Negative Layer) 기법의 세계적인 표준을 제시한 것으로 눈길을 모은다. 이 기술은 조 신부가 2012년 3월 발명특허(특허번호 10-108943)를 획득한 것으로, 다채색 배경을 가능케 하는 친환경적인 방법이다.
대성당 제대 위에 매달린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제공
내용 면에서는 일차적으로 가톨릭교회 전통인 ‘성경과 성전의 주제’를 배경으로 했다. 그리고 각 장소와 위치에 따라 100주년 기념 성당의 역사적이고 영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구대교구민들의 기원과 염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조 신부는 “자극적인 것을 지양하고 단순하고 순도 높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고 덧붙였다.
‘성모상’도 조 신부가 창작 과정에서 많은 고심을 했던 작품이다. 이 성모상은 동양적인 느낌의 ‘광배’를 등장시켜 후광을 표현한 점이 주목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초기의 광배 모양을 변형, 성모상에 맞추는 등 전통적인 이미지 접목을 꾀했다.
조 신부는 범어대성당 성미술 작업에 대해 “그리스도교 미술의 전통을 지금 우리 시대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재창조하며 전통 이미지를 녹여내는 토착화 작업을 시도했다”고 자평했다. “많은 이들의 기도가 있었기에 방대한 작업이 가능했다”고 토로한 조 신부는 “연구소 연구원들을 비롯해서 화학자 공학도들까지 수십 명의 도움을 거친 과정이었다”면서 “그런 면에서 내 작업이 아니라, 이 시대 사람들의 공동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조 신부는 내년 후반기 경 범어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모은 화집도 발간할 계획이다.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뉘른베르크 조형예술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조 신부는 국내외에서 30회 개인전 및 단체전을 열었으며 단일 평면 유리화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부산 남천동 주교좌성당 유리화 등 국내외 20여 곳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다. 구 서울역 로비천창 스테인드글라스, 당산철교 대형벽화, 서소문 순교자 성지기념탑 등도 그의 작품이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