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길 대주교가 수상자들과 운영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와 진리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이하 가톨릭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5월 12일 오후 4시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5층 강당에서 열린 제19회 가톨릭문학상 시상식에는 정길연(베트라) 소설가가 소설집 「우연한 생」(2015·은행나무 출판사)으로 본상을, 박승민(율리아노) 시인이 시집 「슬픔을 말리다」(2016·실천문학사)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은 문학을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되새기는 한편 작가들을 격려하는 축제의 장으로 펼쳐졌다. 또한 교회 안팎의 유명 문인들이 다수 참석해 수상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축하 인사를 전했다.
5월 12일 제19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에서 본상 정길연 소설가가 이광구 우리은행장으로부터 상을 전달받고 있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에서 신인상 박승민 시인이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로부터 상을 받고 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
◎… 시상식은 가톨릭신문사 사장 이기수 신부의 시작기도와 인사말로 시작했다.
이기수 신부는 인사말에서 “오늘 수상자들은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인 슬픔을 통해 삶과 세상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했다”면서 “두 분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우리네 삶을 다시 한 번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문학상 후원사인 우리은행 이광구 은행장도 축사를 통해 “문학이란 보이지 않는 삶을 읽어내는 것”이라면서 “이번 문학상에 선정된 수상작을 비롯한 여러 가톨릭 문인의 작품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우리의 소중한 삶의 길목을 밝히는 가로등이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조환길 대주교, 수상자 격려
◎…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이날 시상식에 참석해 가톨릭문학상 수상자들과 운영 관계자 등을 격려했다. 조환길 대주교는 “한국의 그리스도교 문화와 문학적 토양이 아직 척박하던 시절에 시작된 가톨릭문학상이 19회를 이어오면서 한국교회와 문단에 풍성한 거름을 주었다”며 “구원의 가치와 그리스도교 정신에 바탕을 둔 창작 활동을 진작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할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은 복음 선포에 있어서 문화적 접근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시대”라면서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상대주의가 복음의 가치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인간 정신을 고양시키는 탁월한 문학 작품은 더 밝게 빛을 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본상 상금 상향 조정·신인상 제정
◎… 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회(운영위원장 이기수 신부)는 제19회 시상식에 앞서 운영위원회를 열고, 그동안 시와 소설(아동문학) 두 부문으로 나눠 수여하던 본상을 하나로 통합했다. 상금도 기존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특히 운영위원회는 올해 신인상을 새로 제정했다. 신인상은 종교 유무에 관계없이 등단한 지 10년 이내 작가와 작품을 대상으로 시상한다.
가톨릭문학상은 최근 3년 이내 국내 문학작품 중에서 후보작을 선별해 면밀한 심사를 거쳐 수상작을 선정한다. 올해 심사는 한국교회 안팎의 문단에서 높은 역량을 보여온 구중서 문학평론가와 오정희 소설가, 신달자·김형영 시인이 맡았다.
오정희 소설가는 본상 심사평에서 “소설집 「우연한 생」은 우리가 필히 건너가야 할 삶의 쓰라림과 고단함을 다양한 삶의 형태로 깊이 있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김형영 시인은 신인상 심사평을 통해 “자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박승민 시인의 시선에 측은지심이 담겨 있고, 그 감동과 울림이 만만치 않다”면서 “약한 것, 모자란 것, 소외된 것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함께해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시인의 심성에 숙연함마저 느꼈다”고 말했다.
수상자와 관계자들이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 오정희 소설가, 신달자 시인, 정길연 소설가, 박승민 시인, 조환길 대주교, 구중서 문학평론가(왼쪽부터).
많은 문인 참석해 수상자 축하
◎… 이날 시상식장에는 가톨릭영화인협회 조용준 신부, 한국가톨릭독서아카데미 김정동 회장,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황진선 회장, 한국가톨릭문인회 김선희 사무국장, 역대 수상자인 이태수 시인(3회) 등 교회 안팎의 문인들이 참석해 수상자들과 기쁨을 나눴다.
정길연 소설가가 조환길 대주교에게 수상작 「우연한 생」을 선물하고 있다.
시상식 후 축하연에서 관계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수상소감] 정길연 소설가
“글만 쓰겠다 결심한 뒤 하느님께서 주신 응답”
「우연한 생」으로 우연한 상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5개월 정도 보호자로서 병원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 조그만 영적 공동체 참여를 고민했습니다. 매일 같이 기도하던 중 공동체 참여를 위해 문학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 끝에 글만 쓰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응답을 해 주신 것도 같았습니다.
피정에서 돌아와 열심히 글을 쓴다고 작업실에 가고 있는데 신달자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무슨 이런 기쁜 시련을 주십니까?’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톨릭문학상은 제게 문학을 향한 화살표가 그어진 이정표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이 상을 받겠습니다.
■ [수상소감] 박승민 시인
“12년 전 먼저 떠난 아들 그레고리오가 준 선물”
2003년, 아이가 약이 없는 병을 앓아 많이 아팠습니다. 당시 가까이 알고 지내던 신부님 한 분을 찾아가 아이는 그레고리오로 저는 율리아노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픈 아이는 학교도 못 가고 성당에서 놀았습니다. 그렇게 1년여를 지내다 이듬해 12월 아이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12년이 지나도록 아이는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성당에 가질 못했습니다. 모든 곳에 아이의 자취가 남아 있어 힘들었습니다. 가톨릭문학상은 아들 그레고리오가 오랜만에 아빠 이름을 한번 불러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상 소식 후 당시 신부님을 다시 만나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았습니다. 이 상을 아들 그레고리오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사진 방준식·이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