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사려 깊은 수다’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재미영성학자 박정은 수녀. 옐로브릭 출판사 제공
이 세상에서, 평생을,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여성이니까’ 예뻐야 하고 날씬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희생해야 하고, 싫든 좋든 ‘여성의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 전형적으로 빚어진 모습들이 넘쳐난다. 여성들은 그 전형에 적응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재미영성학자 박정은 수녀(소피아·미국 홀리네임즈수녀회·캘리포니아 오클랜드홀리네임즈대 영성학 교수)는 한 예로 한국전쟁 이후 경제 성장기를 살아온 여성들은 가난에 대한 상처와 못 배운 아픔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희생과 인내를 내면화한 여성들은 배우고 싶고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미뤄둔다.
이러한 여성들이 마음의 빗장을 열고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박 수녀는 “치유와 성장은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서 “욕구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에 응답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박 수녀는 여성들이 자신의 아픔을 사회적인 맥락에서 다시 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이해하고, 자신의 개인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하고 상처와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박 수녀가 제시하는 방법 중 하나가 ‘지혜의 원’ 피정이다.
‘원’은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피라미드’ 구조와 달리 평등한 구조를 상징한다. 이 안에선 가부장적인 피라미드 구조에선 들리지 않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생명을 되찾는다.
박 수녀는 둥글게 둘러앉은 이 ‘지혜의 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수많은 여성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눠왔다. 실패한 여성의 이야기, 슬펐던 어머니 이야기, 아픔 속에 담긴 진실을 찾아낸 자매들의 이야기가 그 안에 있었다.
새로 펴낸 저서 「사려 깊은 수다」(240쪽/1만4000원/옐로브릭)에는 ‘지혜의 원’이라는 공간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사회가 강요한 성역할에서 자유로워지고,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가’.
박 수녀는 먼저 1부에서 여성 피정 ‘지혜의 원’ 구성 원리를 밝힌다. 함께 모이는 작업 자체가 여성들에게 어떤 힘이 되고, 삶의 질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여성의 영적 성장이 이뤄지는 패턴과 공동체가 지닌 힘을 제시한다.
2부에서는 여성 영성의 중요하고 실질적인 주제인 스토리텔링과 경청의 원리, 여성의 몸과 성, 각종 감정을 알고 다루는 방법 등을 설명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모임(피정) 자료들을 소개한다.
박 수녀는 수도자가 된 후 주로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삶에 깊은 공감과 연민을 키우게 됐다. 현재도 이방인 또는 경계인의 삶과 영성에 관심을 갖고 탈식민주의와 여성주의 영성을 연구하고 있다.
박 수녀는 이를 한 마디로 “여성들과 수다 떠는 일이 내 소명이다”라고 말한다. ‘아줌마’들의 수다 모임은 자기 자랑, 남편과 시댁 이야기, 아이들 교육 이야기들만 경쟁하듯 쏟아내는 시간일까.
박 수녀는 여성들이 둘러앉은 시간이 이른바 ‘식상하고’, ‘기 빨리는’ 모임이 아닌, ‘구원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모임’이 될 수 있도록 이끈다.
구체적으로 ‘연장자라고 해서 무조건 답을 주려고 하지 말기’, ‘도덕적·종교적으로 판단하지 말기’, ‘모임에서 나눌 이야기를 미리 생각해보기’ 등의 경청과 공감의 팁을 저서 「사려 깊은 수다」 안에 다양하게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