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성당.
1970년대에 들어서 수원 지역에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교구에 수많은 본당이 들어서게 된다.
수원대리구 지동본당(주임 김형태 신부)도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설립된 본당이다.
1960~1970년대 지동 구역은 수원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가난한 농민들과 6·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1967년 이곳에 성빈센트병원이 개원하면서 전교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교구 차원에서 동수원 지역의 활발한 전교를 위해 본당 설립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당시 교구장이었던 윤공희 대주교는 독일 레겐스부르크 교구에서 파견된 공 콘라드 신부(Konrad Fisher)를 성빈센트병원 원목으로 임명하고, 본당 설립 준비를 당부했다.
이에 공 신부는 대지를 구입하고 1968년 강당을 신축해 본당 설립 준비를 마쳤다. 이어 교구는 1970년 공 신부를 초대 주임사제로 임명하고 본당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 본당 신자 수는 670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동수원에 신시가지와 산업도로가 조성되고 고속도로 진입로가 확장되면서 인구 급증과 함께 교세도 빠르게 성장했다.
본당 신자는 설립 10년 만인 1980년엔 1300명으로 증가, 1983년 말에는 2944명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신자가 급증하자 새 성당 건축이 절실해졌다. 그러던 중 시 도로계획으로 인해 성당을 철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본당은 설립 이전부터 구입해 둔 땅에 긴급히 새 성당을 신축했다. 비록 급히 지었지만 성당 제대에는 최경환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고, 이남규(루카) 작가의 유리화 작품을 갖춘 아름다운 성당을 선보였다.
2008년 성당 리모델링으로 본래 유리화의 구조가 달라지긴 했지만, 본당은 당시 유리화를 리모델링한 성당에 보존해오고 있다.
본당은 빠르게 성장하는 교세와 더불어 내적인 신앙 강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다양한 신자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신앙의 전수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신심단체를 활성화 시켰다. 인근 성빈센트병원과 교도소 등에서의 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본당 공동체의 깊은 신앙은 많은 성소로 이어졌다. 본당은 40여 년의 역사 속에서 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를 비롯한 15명의 성직자를 배출해왔다. 교구 내 본당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다. 본당은 지금도 3883명의 신자들과 함께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