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5월 12일 교황청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세계여자수도회총원장연합회(UISG)와의 특별알현에서 한 수녀와 인사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질의응답 시간에서 여성의 부제직을 연구할 위원회를 설립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CNS】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 부제의 가능성을 언급해 화제다. 교황은 전 세계 여자수도회 장상들을 만난 자리에서 여성의 부제직 참여 가능성을 연구할 위원회를 설립할 것이라고 밝혀, 남성 성직자 중심의 가톨릭교회에 대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을 예고했다.
교황은 5월 12일 세계여자수도회총원장연합회(UISG) 소속 900여 명의 총원장 수녀들을 만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교황은 여성이 부제직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연구할 공식 위원회를 설립할 의향이 있느냐는 한 수녀의 질문에 “받아들이겠다”면서 “위원회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이 문제를 연구할 공식 위원회를 설립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라면서 “이를 시행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여성 부제, 가능할까?
부제(deacon)는 주교와 사제와 더불어 가톨릭교회의 성직제도를 이룬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사제를 도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봉사했다. 부제라는 말도 그리스어로 봉사를 뜻하는 ‘diakonia’에서 나왔다. 초대 교부들은 부제들의 역할을 주교의 귀와 입, 마음과 영혼에 비유해 왔다. 하지만 중세에 들어 부제의 직무수행이 점점 제한돼 전례상의 기능만 남았고, 사제가 되기 위해 잠정적으로 거치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
이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초대교회의 성직제도로 돌아가려는 열망과 성소 부족 등을 배경으로 종신부제직이 재도입됐다. 현재 전 세계에 4만3000명 이상의 종신부제가 있으며, 이중 거의 절반인 1만8000명이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미혼자의 경우 25세, 기혼자의 경우 35세 이상이면 배우자의 동의 하에 종신부제가 될 수 있고 사제처럼 서품된다. 미사나 고해성사를 집전할 수는 없지만, 사제를 도와 세례식 등 교회의 핵심 전례를 주례할 수 있다. 여성 수도자들이 언급한 부제직이 바로 이 종신부제다.
교황의 여성 부제직 언급으로 여성의 성직 참여에 굳게 문을 닫아 놓았던 가톨릭교회에 역사적 변화가 올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4년 교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서품에 관하여」(Ordinatio Sacerdotalis)를 통해 예수는 오직 남자들 가운데서만 사도들을 뽑았다면서, 교회는 여성을 사제로 서품할 권한이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많은 교회 역사학자들은 초대 교회에서는 부제 역할을 한 여성에 관한 많은 증거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초대 교회의 세례식은 나체로 온 몸을 물에 담그는 침례 형식이었기에 여성의 세례를 위해서는 여성 부제가 필수적이었다고 말한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 로마서에 킹크레애 교회의 일꾼인 포이베에 관해 언급하기도 했다.
■ 교황청, 확대 해석 경계
한편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이 “여성 부제직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어 “여성 부제직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도 있었고 실제로 초대 교회에서 여성 부제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정한 봉사를 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여성 부제직이나 여성 사제직 도입에 대해서 언급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여성 부제직은 전통주의자나 진보주의자 양쪽 모두 반대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전통주의자들은 여성의 부제직 허용이 결국 사제직 허용으로 귀결될 것이라면서 반대한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여성 부제는 너무 늦었고 별 소용이 없다고 본다. 이들은 곧바로 여성이 사제로 서품되길 바라고 있다.
한 가지 주지할 점은 롬바르디 신부의 지적처럼 교황은 그저 여성 부제직의 가능성을 연구할 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 위원회가 여성 부제직에 찬성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위원회가 찬성 쪽으로 기운다 하더라도, 위원회 결정에 지금의 교황 혹은 후대 교황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사례는 많다. 예를 들어 1966년에는 출산조절위원회가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에게 인공피임을 추천했지만, 바오로 6세는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 1968)에서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 또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1976년 성경에는 여성의 사제 서품을 반대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신앙교리성은 같은 해 여성의 서품을 반대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 위원회를 통한 식별의 과정
하지만 이번 여자 수도회 총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교황이 교회 내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에 대해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발언에서 주목할 점은 교황이 교회가 내리는 결정에 식별의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했다는 것이다.
교황은 지난 해 열린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우리의 열린 형제애적인 논쟁은 신학과 사목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논쟁을 원합니다.”
교황은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의 부제직도 논의하길 바라고 있다.
교황은 교회의 변화는 찬반 어느 한쪽으로 기우느냐가 아니라, 오직 성령을 통해 식별과 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제는 여성 부제직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러한 식별의 과정을 도입한다. 식별은 느리고,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성령과 하느님 백성에 대한 믿음의 과정이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