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Heinrich Sebastian Rotler). 세례명, 수도명, 성 순이다. 한국명은 임인덕이다. 가족들은 그를 세례명의 애칭인 ‘하이니’라고 부른다. 1935년 독일 뉘른베르크 생이다. 스무 살 때 선교사를 꿈꾸면서 선교베네딕도회 오틸리아 연합회 소속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 입회해 수도자가 되었다. 뷔르츠부르크와 뮌헨에서 신학과 종교심리학을 공부한 후 1965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1966년 한국으로 파견되어 46년간 본당 사목, 청소년 교육, 한센인 사목, 출판과 영화를 중심으로 문화 복음화에 힘썼다. 2013년 본국 수도원에서 귀천하였다.
필자는 열두 해 동안 분도출판사 책임자로 일했다. 임기 내내 선임자인 임인덕 신부님께 묻고 들었다. 가르침도 받았지만, 그의 일도 힘껏 도왔다. 열 차례 독일 여행을 함께 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 전시회 참석이 목적이었다. 매번 전시회장 가까이에 살았던 그의 막내 여동생 모니카 집에 묵었다. 그녀의 음식 솜씨는 일품이다. 매부 에크하르트는 의사였는데, 늘 옥토버페스트 비어를 준비해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체류 기간 내내 저녁마다 다락방 벽난로 앞에서 얘기꽃을 피웠다. 그의 가족력을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무도 임인덕 신부를 영성가로 인식하지 않는다. 분명 그에게 영성이 있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 오랜 시간과 교류가 필요했다. 대화와 목격으로 알게 된 그에 대해 영성, 출판, 영화로 나누어 세 차례 소개하고 싶다. 영광스런 일이다.
■ 그는 전달하는 사람이다
‘한국 가톨릭문화의 거장들’, 놀라운 통 큰 기획이다. 문득 이 기획에 ‘임인덕’이라는 이름을 올리는 것을 잠시 주저해본다. 다른 거장들은 모두 출중한 1차 창작자이나 그는 아닌 연유다. 그는 책을 직접 쓰지 않았고, 영화도 직접 찍지 않았다. 그는 그 시대가 주는 소통 도구를 활용한 충실한 전달자였다. 문화 소개꾼이다. 이 점을 전제해야 그의 참모습이 보인다. 그는 스스로를 전달자라고 했다. 철저히 전달하는 역할만 했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과, 자유와 사랑과 용서라는 그분의 가치관을 전하고자 이 땅에 왔습니다. 선교사는 주님의 말씀과 복음의 가치관을 전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의 짧은 두 문장 속에 그의 전 생애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복음적 가치만을 전달한 그는 분명 복음적 영성가일 터이다.
■ 그는 집념하는 사람이다
그를 기억하면 우선 집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어떤 고통과 비난도 감수했다. 그의 삶은 불타는 집념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것은 신앙과 신념으로 충만한 집념이다. 수도원 안에서도 황소 같은 그의 집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한 선교사의 거룩한 사랑의 집념이다. 집념도 영성이다.
■ 그는 응해주는 사람이다
그는 늘 바쁘게 살았어도 도움을 청하는 이의 말을 들어주었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사치다. 그의 사무실 문 앞에 놓인 반쯤 비운 중국집 볶음밥 접시와 그의 낡은 옷이 이를 증명한다. 도움을 청하는 이는 빈손으로 떠나는 일이 없었다. 그는 가난한 이웃들의 딱한 사정을 언제나 내치지 않았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듯, 임 신부가 있는 곳에 그 어떤 해결책이 있었다. 가난한 이, 쫓기는 이, 억압받는 이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주었다. 한 독일인 동년배 수도 사제는 말한다.
“임 신부는 거룩한 사람입니다. 평생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은혜로운 일입니다.”
늘 응해주는 그의 삶의 방식은 예수님의 마음을 꼭 닮아 있다. 그의 장상이 말했다.
“일이 너무 많으시니 출판 일과 한센인 사목 중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그는 한센인과 함께 하였다. 응해주는 영성이다.
■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에게 좌와 우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에겐 수도자와 사제와 선교사의 차이가 없다. 그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소명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에게 유식한 책과 의미 깊은 영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인간을 만나게 하는 가교 역할만 한다. 사제 복장을 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의 기도는 남에게 드러나지 않는 비가시적 특성이 있다. 그에게 활동과 기도는 하나의 통합된 한 뭉치의 ‘하느님의 일’이었다. 그는 법과 규칙과 내규 등 모든 법제적인 것은 오직 사랑 안에서만 의미가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참된 자유는 이런 것이다. 자유의 영성가 임인덕 신부이다.
선지훈 신부(왜관본당 주임)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수도사제이다. 대구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에서 신학 석사를 취득했다. 1997년 사제품을 받았고 분도출판사 책임자로 활동한 바 있다.
선지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