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주문모 신부 시복 2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중국, 한국 그리고 천주교’
한·중 신앙의 뿌리 확인… 문화 교류 통해 신앙 증진
장쑤성 샤오헝탕 성당서 열려
곤여만국전도·상재상서 등
고문서와 편지, 지도 전시
곤여만국전도, 1602년.
문화 교류를 통해 발전한 한국과 중국의 천주교회사를 조명하는 장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중국 장쑤성 쑤저우교구 샤오헝탕 성당 문화관에서 열리고 있는 주문모 신부 시복 2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중국, 한국 그리고 천주교’이다. 5월 24일 개막한 이번 전시회는 오는 6월 30일까지 계속된다.
전시회는 천주교가 17~19세기 ‘서학(西學)’의 형태로 서양의 문물과 함께 중국을 통해 한국으로 전해지고, 이후 한·중 양국에 ‘신앙(信仰)’으로 뿌리내리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기획됐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성된 100여 점의 고(古)문서와 지도, 편지와 같은 유물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으로도 의미를 더한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부위원장 원종현 신부)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원종현 신부)는 자료 제공과 자문 등을 통해 이번 전시를 지원했다.
중국 장쑤성은 주문모 신부의 고향이며, 전시회가 열리는 샤오헝탕 성당은 중국 최대 규모로 5월 초 봉헌돼 더욱 관심을 모은다. 또 샤오헝탕 성당은 성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봉헌해 한국 순례객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상하이 진자샹 성당에서 불과 50여 ㎞거리에 위치, 상하이와 쑤저우를 찾은 순례객들이 천주교를 통한 양국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시간을 돌아보다
중국에서도 그리스도교는 서학(西學)이 천문학, 역법을 비롯한 서양의 문물과 함께 소개되는 과정을 통해 전파됐다. 전시회에서는 1538년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광둥성과 쑤저우를 거쳐 베이징에 정착하는 과정을 영상과 기록물로 확인할 수 있다.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1602)는 처음으로 중국 선교에 성공한 마테오 리치가 명말(明末) 학자 이지조(레오)의 도움을 받아 제작한 세계지도로, 그의 폭넓은 인문학적 관심을 보여준다.
리치 신부는 중국의 문화에 영합하는 방식으로 전교한 선교사이다. 천주교의 주요 교리에 관해 중국학자들과 리치 신부 사이에 이루어진 문답을 수록하고 있는 ‘변학유독(辨學遺牘)’(1880), ‘기인십편(畸人十篇)’(1896) 등은 이러한 리치 신부의 선교 노력과 중국 내 서학의 전파 모습 등을 보다 여실히 드러내는 자료다.
기인십편, 1896년.
상재상서 한글 필사본, 필사년도 미상.
주문모 신부. 1794년 최초의 외국인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는 짧은 선교활동 끝에 신유박해(1801년) 당시 새남터성지에서 순교했다.
북경의 주교들. 왼쪽 상단의 사라이바 주교는 1811년 조선신자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박해에 처한 신자들을 위로하고 강복하기도 했다.
■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
조선의 서학은 중국에서 수입된 서적과 문물을 통해 전파됐다. 조선의 실학자들은 17세기 초 여러 문물과 한역세계지도, 한역서학서 등을 통해 서학을 도입했다. ‘한역서학서’란 명 말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천주교의 교리를 전파하고 서양 문명을 알리기 위해 한문으로 엮어 펴낸 서적들을 말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리치 신부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비롯해,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 페르비스트 신부가 저술한 천주교 입문 교리서인 ‘교요서론(敎要序論)’(1670), 스페인 출신 도미니코회 선교사 바로가 저술한 호교서 ‘성교명징(聖敎明徵)’(1677)과 같은 고문서들을 접할 수 있다. 이들 서적은 서학이 수용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또 ‘의주북경사행로(義州北京使行路)’(18세기)는 서울을 출발해 의주를 거쳐 북경에 이르는 조선 사신들의 왕래 경로를 한눈에 보여준다. 당시 북경 황실의 천문역산 기관이었던 흠천감(欽天監)과 예수회 신부들의 선교 거점이었던 천주당(天主堂)은 조선 사신들이 즐겨 방문하던 곳이었다.
조선교회는 1784년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 권철신, 정약용에게 대세를 줌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신자들은 박해 속에서도 스스로 교리서를 번역하고 공유하면서 신앙을 발전시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한국에서 저술된 호교서가 중국인 신자들을 위한 교리서로 활용되기 위해 다시 역으로 홍콩에서 편찬되는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과 한국 간의 밀접한 교류의 양상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전시물은 기해박해(1839)를 앞두고 성 정하상이 저술한 한국 최초의 호교서 ‘상재상서(上宰相書)’이다. 전시회에서는 상재상서의 한문 전사본(1829 전후)과 한글 필사본(전사자 미상), 그리고 이후 홍콩의 고약망(高若望, Giovanni Timoleone Raimondi) 주교가 간행한 한문 활자본(1887) 세 가지 형태를 소개한다.
북경지도. 도성 안에 4개의 성당, 즉 남당(1605년), 동당(1653년), 북당(1703), 서당(1725)과 신학교, 각종 학교, 병원 등이 표시돼 있다.
■ 중국에 펼쳐지는 교류의 장(場)
전시회에서는 주문모 신부와 김대건 신부의 연보와 서한, 북경 교구장이었던 구베아 주교가 발송한 서한과 같은 유물들을 통해, 이들이 한국에서 행한 사목 활동도 짚어 볼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되는 데 있어 중국은 교류가 이루어지는 거점이 되어 왔다. 즉 서방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한국과 중국 양국 간의 긴밀한 요청이 공유되고 수렴되는 장소였다.
특히 전시회는 주문모 신부의 복자 기념일(5월 29일)을 맞아 기획, 중국교회가 한국에 미친 영향을 주문모 신부의 활동을 통해 확인하는 장이 되고 있다. 주문모 신부는 조선에 파견된 최초의 해외 선교사제로 한국 순교복자 124위 반열에 올랐다.
전시회는 한국교회와 중국교회가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의미의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중국, 한국 그리고 천주교’ 기획전은 한·중 양국의 신자들이 신앙의 역사를 이해하고, 신앙의 뿌리를 확인하는 한편 문화 교류를 통해 신앙을 증진할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의주북경사행로, 18세기. 서울을 출발해 의주를 거쳐 북경에 이르는 조선 사신들의 왕래 경로를 한 눈에 보여준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