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을 하는 남수단 사람들.
어느 날, 초등학교 교복을 입은 한 아이가 사제관에 와서는 저에게 공책에서 찢은 듯한 종이 한 장을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신부님, 학교에서 선생님이 낸 문제인데, 답 좀 알려주세요.”
아이가 내민 종이에는 손으로 베껴쓴 객관식 문제가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을 주는 것인가?’
①식량 ②돈 ③직업 ④옷
저는 주저 없이 3번, 직업이 답이라고 아이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다른 답들은 그저 당장 필요한 것을 나열하고 있지만, 일자리의 제공은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겠고, 또 필요한 것들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대답을 들은 아이는 시원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정답이 1번 식량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제 대답에 석연치 않아 하는 아이를 돌려보내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을 돕는 방법에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고 원하는 것이 다른데, 어떤 것이 옳은 방법이고 어떤 것이 그른 방법이라고 쉽게 말 할 수 있을까?’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곳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공장도 회사도 없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소를 치고, 우기에는 농사를 짓고 건기에는 강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는 단순한 삶을 똑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계를 위해 하는 이 모든 일이 단순하다고 해서 직업이라 할 수 없나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전문 농부가 아니라 하더라도, 기업형으로 목축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들은 나름대로의 전통과 방식 안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꽤 많은 돈을 보수로 받는 직업을 운 좋게 가졌다고 쳐도, 이곳에서는 돈이 그다지 효용가치가 없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을 뿐더러 화폐단위를 마음대로 정하며 돈을 계획 없이 찍어내는 정부 탓에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서 사람들은 돈보다도 소나 식량을 선호합니다.
내전으로 인한 난민발생과 그로 인해 버려진 땅 때문에 국민 식량의 대부분을 원조에 의지하고 있는 남수단. 최근 몇 해 동안은 가뭄까지 겹쳐서 땅에서 소출을 얻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남수단에서는 어쩌면 그 아이의 말대로 배고픔을 채워줄 수 있는 식량을 주는 것이 사람들을 돕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도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고 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과 관심으로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채워주려는 노력이 바로 그 사랑과 관심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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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