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수원대리구 고색동본당
설립 초기 신자들, 증기기관차 타고 미사 참례하기도
시흥·화성 등 넓은 지역 관할
공소 때부터 열성적 신앙 ‘눈길’
교구 공소 중 최초로 Pr. 창립
고색동성당.
수원대리구 고색동본당(주임 김민호 신부)은 수원 남서부와 시흥, 화성, 안산 지역 등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온 본당이다.
본당 관할 지역에 처음으로 공소가 설립된 때는 1910년이다. 오목내공소가 첫 설립 공소다. 이 공소는 1923년 수원본당(북수동본당)이 설립됨과 동시에 고색공소를 분가하고 지역에 복음을 전해나갔다.
고색 지역은 본당까지 1시간 반 가량 떨어진 곳이었지만, 뭇 본당에 못지않은 적극적인 신앙 활동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교구에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된 지 불과 한 달만인 1959년 5월에는 샛별쁘레시디움을 창립하기도 했다. 교구 내에서 쁘레시디움을 설립한 공소는 ‘고색공소’가 처음이었다. 이런 열성적인 신앙은 성소로 이어져, 본당은 10여 명의 사제를 배출하기도 했다.
모본당이었던 고등동본당은 1965년에 이미 고색공소를 본당으로 분리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었다. 신앙적으로 활기가 있었을 뿐 아니라 신자 분포나 선교 활동을 위한 지리적인 여건 면에서도 장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고등동본당은 공소 강당 인근 대지를 매입하고 사제관 건립을 마쳤다.
하지만 본당 설립은 성당부지를 매입하고도 5년이 흐른 후에야 이뤄졌다. 교구가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복자기념성당’ 건립을 추진하면서 고색공소의 본당 승격이 연기됐기 때문이다. 또 작은형제회가 교구에 진출하면서 세류동본당이 세워지고 나서야 고색동의 본당 승격이 추진될 수 있었다.
본당 승격 당시 본당공동체의 신자 수는 1601명이었다. 설립 초기에는 시흥, 화성, 안산에 걸친 넓은 지역을 관할해 사목에 어려움도 컸다.
당시 본당 인근에는 지금은 사라진 수인선 고색역이 있어 공소 신자들은 대축일 미사 참례를 위해 증기기관차의 화물칸을 타고 다니기도 했다. 해마다 예수성탄대축일에는 공소신자들이 본당 인근 신자 집에 머무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이어져 오기도 했다. 주임신부도 판공성사를 위해 2~3일에 걸쳐 본당 관할 공소를 순회했다.
본당은 1971년 성당을 완공하면서 전교에 박차를 가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이미 신자 수가 2000여 명에 육박했다. 본당 지역을 분할해 나가면서도 꾸준히 신자 수가 증가해 2000년대에 들어서는 3000명을 넘어섰다.
1990년 말에 들어서면서 본당은 새 성당 마련을 준비했다. 시의 도로계획으로 성당 부지가 도로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본당은 기존 성당부지 주변을 매입하고 2005년 지금의 성당을 짓고 본당설립 40주년이 되는 2010년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