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퀸즈 한인성당 미사 장면.
뉴욕에 퀸즈 한인성당이 있다. 시카고에서 펜실베이니아의 스크랜턴으로 옮길 즈음 이 성당의 성음악 감독이셨던 김종헌 신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신부님이 이제 학업을 마칠 때가 돼 감독직을 그만두게 됐는데 당신 후임으로 그 자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셨다. 스크랜턴과 뉴욕은 차로 두 시간 거리라 매주 이 거리를 오가는 일이 쉽지 않을뿐더러, 공부에 전념해야 할 상황에서 주말 시간을 모두 이 일에 빼앗긴다면 학업에 지장이 있을 듯해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그러나 신부님은 막무가내로 나를 후임으로 추천해 놓고 그만두셨다. 그러자 당시 본당 신부님이셨던 안상인 신부님께서 연락을 하셨다. 일단 와보라고 하셔서 방문하는 날로 자리를 떠맡게 됐다. 오전 8시 미사 한울림 성가대와 11시 교중미사 마니피캇 성가대를 지도하는 일이 주 업무였다. 목요일 수업이 끝나는 대로 뉴욕으로 달려가 금요일 저녁 한울림 성가대를 가르치고, 토요일엔 오르간 연습 등 밀린 숙제를 하고, 주일 7시 다시 한울림 연습부터 시작하여 8시 미사, 미사 후 마니피캇 성가대 연습, 11시 미사 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 다시 마니피캇 성가대 연습을 마치면 오후 5시, 조금 쉬고 저녁 먹고 출발해 스크랜턴에 도착하면 거의 오후 9~10시가 된다. 그리고는 월요일 다시 학교에 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빡빡한 생활을 견뎠는지 싶다. 그래도 본당에서 주는 월급이 짭짤하여 수도원에 손 벌리지 않고 학비를 충당한다는 보람에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미국인들만 상대하다가 퀸즈 한인본당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안상인 신부님은 참 자상한 분이셨다. 마치 아버지같이, 삼촌같이 편안하게 대해주셨다. 또 당시 보좌 신부님이 신기하게도 나랑 같은 서울 창동본당 출신 박성우 신부님이셨다. 동갑내기 친구라 가끔 박 신부님과 술 한 잔 걸치며 정담을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한 제 견진대부님이신 차충재 회장님이 그 본당에 계셔서 자주 뵐 수 있어 참 좋았다. 성가대원들은 모두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당시만 해도 아직 젊을 때라 경험도 부족했고, 참을성도 없어 자주 화를 내고, 많은 실수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부족한 나를 너그럽게 잘 받아주셨다. 참 감사한 일이다. 5000명가량의 신자들이 모두 열심히 미사에 나오는 터라 미사마다 성당이 가득 찼는데 특히 성가가 우렁차 전례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 비결은 미사 시작 15분 전에 하는 성가연습이었다. 주임 신부님께 허락을 받아 그날 미사 전례에 쓰이는 성가들을 미사 전에 가르쳤는데, 참 재밌게 따라 하시면서 기뻐들 하셨다. 또 한 가지 성가가 우렁찼던 이유는 성가대 위치가 제대 왼편에 있어 신자들이 지휘자를 보면서 쉽게 성가를 따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렁찬 성가는 확실히 전례의 감동을 배가시켜준다. 모든 본당에서 미사 전에 단 10분이라도 성가연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성가대의 위치를 신자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배치하려고 노력한다면, 모든 신자들이 우렁차게 성가를 부르며 좀 더 감동적인 전례를 체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퀸즈 한인성당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실 신자분들이 그립다.
강수근 신부(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수도회 한국관구장)
1992년 사제로 서품됐다. 미국 메리우드대학 음악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로마 교황청립 성음악대학 작곡과를 수료했다. 현재 국악성가연구소 소장과 우리소리합창단(서울) 담당 사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