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함께 하려면 그와 정신과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진정한 관계가 이뤄질 수 없다. 정신은 그의 생각이요 마음은 그의 뜻인데, 생각과 마음이 달라서야 어떻게 함께 한다 할 수 있겠는가? 요새 정치인들처럼 겉은 함께 하면서 속은 이권만 챙긴다면, 나라는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선지 지금 돌아가는 우리 세상은 정말 가관이다. 정신분열병자, 자살자, 우울증, 묻지마 살인자, 성폭행이 만연해 있다.
이와 같았던 사회, 종교, 정치판에 조용히 나타나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사회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은 자유와 평화를 축복하시고 다른 사람을 자기 형제로 여기라 하셨으며,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셨다. 삶은 돈과 권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의로써 사는 것이라 하신,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셨다.
나는 태어나서 3일 만에 세례를 받았고 매일 성당 미사에 참례했고 고등학교 때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사실 사제가 될 때까지도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 믿음은 그저 하느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죽으면 천당에 간다는 정도였다. 그렇게 교리문답을 줄줄 외우고 매년 찰고를 받았건만, 내 신앙은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에 다가서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물론 사제 초년기 때지만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어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며 사람과 사회를 알기 시작하니,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말로 받게 된다”고 하셨다.
자유와 평화와 행복이 그런 삶에 있다는 것이 그분의 정신이요 뜻이었다. 그분은 그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가셨지만 진정 예수님께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그 순간부터였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이 되신 그분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라셨고, 모든 이가 형제가 되기를 바라셨으며 평화롭고 사랑 가득한 세상을 열어가기를 희망하셨던 것, 그것이 그분이 실현하려던 것임을 알게 됐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삶의 빛이요 길이며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을 믿는 믿음이 속과 겉이 다르다면 우리 믿음의 진실성은 없어진다.
며칠 전에 은퇴한 한 신부님을 만났다. “이러다간 교회도 망한다. 신자들은 다 떠나간다. 교회와 신자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너무 없다”면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것 이었다. 나도 물론 맞장구를 쳤다. 돈 많이 내는 신자에게 축복이 있다는 식은 정말 웃긴다.
나는 때로 종교도 정치판과 비슷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자기 속은 감추고 겉으로만 하느님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사람들의 고통에는 관심 없고 하느님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지나치게 비판적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정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 우리 가톨릭교회나 신자들도 예수님의 정신과 마음을 알고 진심으로 그를 따라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도 신자들도 의롭고 사랑 가득한 사회를 위해 사는 것에 의미와 가치를 둬야 하지 않겠는가? 정말 사람과 사회가 좋아졌으면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니까.
하재별 신부
원로사목자·사랑과 평화 생활실천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