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근무했던 대학병원에서의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벽같이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환자가 의식이 없고 숨을 잘 쉬지 못합니다.” 이 환자는 하루 전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로 일주일 정도 전혀 먹지 못하다 입원한 미혼의 37세 유방암 환자였다. 이미 뼈 전이가 매우 심한 상태였고 이로 인해 혈중 칼슘 수치도 매우 높은 데다, 탈진으로 인해 콩팥 기능이 떨어져 있었다.
‘연세가 많으신 노인분도 아니고 젊은 환자가 어떻게 이런 상태로 집에 있었단 말인가?’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차올랐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처음 진단 당시는 수술이 가능했는데 무서워서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도 모르게 머리는 산발해서 옷만 걸치고 병원으로 차를 마구 몰아 도착했다. 이미 혈압은 떨어져 쇼크 상태였고 의식도 전혀 없었다.
‘칼슘 수치는 약으로 조절 가능하고 급성 콩팥 기능 저하도 극심한 탈진으로 인한 것이라면 수액으로 좋아질 가능성 있고, 음… 숨 못 쉬는 것은… 기관지삽관술밖에 없구나!’
나도 여느 종양내과 의사처럼 말기 암 환자의 심폐소생술이나 기계호흡 등의 연명치료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이 환자는 그냥 하늘나라로 보내기엔 너무 안타깝고 의사로서 뭔가를 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숨 쉬는 것만 보조해주고 그동안 교정 가능한 것들을 교정해주면 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대로 포기하기엔 이른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면서 연명치료거부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던 보호자에게 나도 모르게 기관지삽관술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해버렸다.
아버지는 울면서 딸이 더 고생하는 것은 볼 수 없다며 이대로 하늘나라에 가게 해달라고 거부했고, 어머니와 남동생은 언제 죽더라도 조금의 소생가능성이 있다면 해달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실랑이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외쳤다. “이대로 보내실 거예요? 이제 5분만 지나도 그때는 기회가 없습니다. 어쩌실 거예요?”
아버지는 딸의 얼굴이 점점 파래지는 것을 보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번 해 주세요….” 지체 없이 기관지삽관술을 시행했다. 그다음엔 인공호흡기에 연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중환자실을 가야 한다. 중환자실 담당 의사에게 전화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말기 암 환자에게 줄 자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인공호흡기는 빌려줄 수 있단다.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조금 있다 의식이 돌아왔다.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라며 입안에 꽂혀진 튜브를 뽑으라고 눈짓을 한다. “이 가느다란 튜브가 당신의 생명을 지키고 있어요. 이렇게 부모님, 남동생 알아보고 손가락으로 글씨까지 쓰는 것은 이 가느다란 막대 덕입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몸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조금만 참읍시다”라고 했더니 환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잘 참아주는 환자가 고맙고 예쁘다.
(다음 회에 계속)
전성하(토마스 아퀴나스) 과장/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혈액종양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