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에서 영화 편집 과정을 확인하고 있다. 원작 선정에서부터 번역, 제작, 홍보, 유통, 재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과정도 임 신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영화인, 임인덕 신부는 빼어난 영상미와 가치로운 내용을 겸비한 작품만 선정하는 이로 유명하다. 여기에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암시적 여운이 신묘하게 담긴 작품이라면 더욱 최상이다. 한 30년 전쯤,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영화감독 마르틴 신부가 내한해 한국 순교자에 대한 영화를 찍었다. 공동작업을 했던 그는 친구 마르틴 신부가 촬영한 필름을 사장시켰다. 편집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영화적 가치’를 충족하지 못했던 것 같다. 누가 그의 영화관을 요약해 보라면, ‘자각적 여운과 암시적 감각에의 집착’이라고 즉답하겠다. 아무도 그를 철학자로 인지하지 않지만, 그는 시류 앞에 꼼짝도 없는 ‘영화철학자’였다. 그는 이론과 실무와 감각을 철학적으로 집적한 영화인이었다. 어찌 그가 우리에게 왔을까? 더듬어 본다.
■ 천생 이야기꾼
이야기를 자산으로 쳐주는 시대다. 삶에서도 이야기는 참 소중하다. 그는 준비 없이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천생 이야기꾼’이었다. 물론 어릴 적부터 시작된 독서의 산물이다. 어린 동생들과 그가 만난 학생들이 일차 수혜자들이었다. 은연중에 비유적으로 변하는 그의 이야기는 전혀 교도적이지 않다. 이야기가 그를 만들었다. 그의 마음에 수록된 이야기들이 좋은 시나리오를 찾아주었다. 그가 출시한 아동과 청소년 대상물, ‘프레데릭 백의 선물’, ‘핑크트헨과 안톤’, ‘하늘을 나는 교실’, ‘야생닭 클럽 I II’, ‘쌍둥이 찰리와 루이제’, ‘하얀 꼬마곰 라스’, ‘잊혀진 장난감’, ‘닥터 코르작’ 등은 한 이야기꾼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 문화교육도시 뮌헨
뮌헨은 영화와 그를 맺어준 결정적인 곳이다. 거기서 종교심리학과 교리교수법을 연구했다. 당시 수도자들은 수도복을 입고 학교에 다녔는데, 대학 뒤편 어느 가정집 베란다에 수도복이 휘날렸다. 고모 집에 걸린 그의 수도복이다. 그의 시절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장면이다. 그때 그는 영화 포럼에 참여하며 수많은 영화와 감독과 배우를 만났고 마침내 하느님의 부재와 침묵을 담은 영화, 잉마르 베리만의 ‘침묵’을 보았다. 신학이 전하지 못하는 메시지를 영화는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가 출시한 베리만의 ‘일곱 번째 봉인’, ‘산딸기’, ‘침묵’, 펠리니의 ‘길’ 등이 그 시절에 그가 접한 영화라는 사실은 축복이다, 그에게 우리에게.
세계 가톨릭 미디어 총회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임인덕 신부. 1974년. 임 신부는 다른 아시아 나라들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의 사명감을 더욱 굳건히 하곤 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제공
■ 최초의 이름, 시청각실
안팎으로 다들 그냥 ‘시청각실’로 불렀다. 이 이름은 그의 총체적인 시청각 작업을 대변한다. 정확히 44년 동안 이어진 결실들을 나열해 본다. 융판화(35종), 슬라이드 필름(120여 종), 사진말(총 9집), 음악 테이프(소노룩스 코리아 130여 종), 이콘과 성물(40여 종), 비디오물(100여 편) 등이다. 참으로 놀라운 업적이다. 그림, 음악, 사진, 성화, 슬라이드 등을 총망라하는 그의 시청각 작업은 영화로 최종 귀결됐다. ‘사계절의 사나이’, ‘나자렛 예수’, ‘찰리 채플린’ 등으로 기억되는 16㎜ 영화 상영과 비디오 제작 작업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겨울 빛’, ‘십계’, ‘거울’, ‘잠입자’, ‘잔다르크’, ‘어머니와 아들’, ‘단스’ 등 거장들의 작품을 소복하게 소개했다. 그는 영화가 주는 종교적 체험의 의미에 주목하며 작품을 선정했다.
■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그에게 들어봐야 한다. 주옥같은 그의 조각 말들을 모아본다.
“좋은 영화는 사람의 가치관을 변하게 합니다. 종교 영화가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는 인간의 품위, 삶과 죽음, 구원, 올바른 가치관, 양심, 평화, 인권 등의 메시지와 영성을 충분히 발전하게 해줍니다. 좋은 영화는 눈에 보이는 것 뒤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 매력적입니다. 최상의 영화는 그저 암시만 줄 뿐 정곡을 찌르되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작가주의 영화와 예술영화는 굳이 신앙이라든지 신을 주제로 삼지 않고도 종교적 체험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시대에 오신다면 분명 영화감독으로서 메시지를 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쉽고 편안한 비유들로 말씀하셨습니다. 영화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주의에 물든 영화, 폭력을 담고 있는 영화는 그런 역할을 절대 할 수 없습니다.”
2005년 ‘시네마 천국을 향한 순례, 임인덕 신부의 영화 사목을 기리며’ 축하식에서 당시 주교회의 매스컴위원장 최덕기 주교가 임 신부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그를 기리는 묘안들
필자가 사목하고 있는 왜관본당 교육관 보수 공사가 완료됐다. 이참에 문화관으로 개칭하고 강당을 ‘준영화관’으로 꾸몄다. 바닥은 원목, 벽과 천정은 고급 흡음재로 마감했다. 합당한 음향 시설도 갖췄다. ‘월례영화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임인덕 신부가 아꼈던 영화, ‘파리 텍사스’가 첫 상영물로 정해져 있다. 그의 사역을 잇는 신나는 일이다.
왜관 수도원에 그의 체취가 아직 남아 있는 사무실과 스튜디오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소박한 박물관으로 꾸며 그의 업적을 기리면 좋겠다는 멋진 아이디어가 들려온다. 천국에서 웃으실까? 권은정이 쓴 평전, 「책으로 노래하고, 영화로 사랑하다」가 있다. 일독을 권한다. 막내 여동생 모니카 베커 여사와 이미림과 정태영이 생을 두고 그의 영화인생에 동반했다. 3주간, 3부작 글쓰기 끝. 휴~. 복된 ‘피정시간’이었다. 영화로 세상을 무지 사랑한 하이니! 고마워요~.
선지훈 신부(왜관본당 주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수도사제이다. 대구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에서 신학 석사를 취득했다. 1997년 사제품을 받았고 분도출판사 책임자로 활동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