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 레지던트가 24시간 옆에 달라붙어 혈압과 산소포화도 등 생체 징후를 체크하여 바로 교정했고, 병동 간호사들도 중환자실에서나 볼법한 환자를 군소리 없이 너무나 열심히 돌봐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일시적인 것이고 결국 암이 더 진행되면 다시 맞이해야 할 일일수도 있지만 환자는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응급상황이 3주 정도 지났다. 기계를 조심스럽게 떼어 보았다. 환자는 다행히 혼자 힘으로 숨을 잘 쉬었다. 소름이 돋았다. 환자가 혼자 힘으로 숨을 쉬고 있구나! 기계를 못 뗄 줄 알았는데…. 어떠한 생명도 소홀한 생명은 없구나. 어떠한 환자의 생명도, 설령 말기 암 환자의 생명이라도 내가 쉽게 포기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구나!
환자의 아버지는 그때 본인의 반대가 겸연쩍은 듯했으나, 딸을 하늘나라로 보내겠다고 마음먹은 피눈물 어린 그 마음을 알기에, 우리는 그냥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그때의 어떤 결정도 틀린 결정은 아니었으리라.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하늘나라로 가는데…. 다만 조금 더 가족들과 얼굴 보며 세상의 숨을 크게 쉬어보고 마지막을 정리하고 갈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주었다면 그게 우리 의사들이 할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기계를 완전히 제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환자는 반나절은 잘 견뎌냈지만 반나절이 지나자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고 힘들다고 표현했다. 다시 기계를 연결해주었더니 환자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가 보다. 말을 못하니 글씨를 써보라고 하니 ‘뻥쟁이’라고 쓴다. 웃음이 나온다. 아마 기계를 떼고 좋아졌다고 했는데 다시 기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이겠지? 환자의 상태가 좋아졌으니 무슨 말이라도 다 기분 좋은 소리였다.
환자는 내년 봄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고 싶다고 했다. 아쉽게도 나는 다음 해 봄의 개나리와 진달래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족들과 두 달간의 즐거웠던 시간과 헤어짐의 시간을 지켜보았다.
하루살이의 생명은 단 하루뿐이다. 말기 암이 완치되지 않으니 그 어떤 치료도 소용없는 것일까? 암 환자의 마지막을 많이 본 종양내과 의사지만 소중하지 않은 하루는 단 하루도 없었다.
어느 60대 유방암 환자가 생각난다. 한참이나 의식이 없다 치료로 깨어난 후, 여자 레지던트 선생님을 보며 던진 한마디가 “어머, 선생님 너무 예쁘세요”였다. 그래서 옆에 있던 내가 웃으며 “머리에 이상이 있으신 것 같은데 검사를 해봐야겠어요”하며 박장대소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 환자는 다음날 자면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도 환한 미소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돌아가셨던 그분이 항상 생각난다. 참으로 행복한 죽음이었다고 자평한다.
우리 의사는 사람이고 환자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가 얼마나 귀한 직업인가? 그 환자분들의 환한 미소가 오늘도 나를 다시 활기차게 한다.
전성하(토마스 아퀴나스) 과장/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혈액종양내과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와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로서 한의사와 의사 전문의 자격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