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본당의 역사를 따라] 안산대리구 광명본당
건축기금 5만 원으로 출발… 신자 정성 모아 완공
1972년 교구 편입되고 교세 증가
본당 설립 후 철산·광북 등 분당
광명성당.
광명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자연부락이 형성된 오래된 마을이지만, 신앙이 뿌리내린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안산대리구 광명본당(주임 홍창진 신부)은 광명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 교세를 크게 성장시킨 본당이다.
광명지역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때는 1946년. 광명리 301번지에 위치한 신자 집에서 33명의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하면서 광명리공소가 설립됐다. 사제는 매월 서울 도림동본당이 관할하던 이 공소를 방문해 미사를 집전했다.
공소는 6·25전쟁으로 잠시 해체됐다가 1963년 구로본당 소속 공소로 부활했다. 하지만 신자 수는 공소 설정 당시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공동체 또한 오랜 기간 활기를 잃고 있었다. 광명 지역에는 서울을 생활권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교통 불편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서울로 떠났기 때문이다.
공소 신자가 증가한 것은 1972년 교구로 편입되면서부터다. 광명 지역에 대규모 택지조성사업이 진행되자 공소회장을 비롯한 신자들은 천주교회를 홍보하고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신자 찾기 운동을 벌였다.
1973년 교구의 준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신자들은 레지오 마리애, 청년회, 연령회, 교리교사회를 조직하는 등 사도직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성당부지를 마련하는 등 본당 승격을 준비했다. 준본당이었던 본당은 마침내 1975년 3월 31일 광명리본당으로 신설됐다. 설립 당시 신자 수는 1200여 명이었다.
본당이 설립됐지만 본당은 성당 부지만 확보했을 뿐 목욕탕 2층 임시성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성당 건축이 시급했기에 단돈 5만 원의 건축기금을 모아 우선 기공식을 열었다. 신자들은 어려운 경제 사정 속에서도 알음알음 건축기금을 모아 1977년 성당을 봉헌했다.
성당을 신축한 본당은 숨도 돌릴 겨를 없이 새 본당을 분당해야 했다. 본당 설립 5년 만에 신자 수가 4000명을 돌파했던 것이다.
이에 1982년 철산본당을 분당했지만 신자 증가가 빨라 1988년에는 신자 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 본당은 끊임없이 전교활동을 벌이면서 1998년에 광북본당을, 2008년에 광문본당을 분할해 나갔다.
현재 4152명의 신자들이 본당공동체를 이뤄 지역 복음화에 정진하고 있다. 특히 구역, 반 기도회 활성화를 통해 지역의 가난한 이웃들을 돌보고자 노력한다. 또 청소년활성화본당으로서 청소년·청년 신앙생활을 위한 다양한 사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본당 전신자가 참여해 봉헌한 성경 필사본.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