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민화위, 신자 통일 의식 관련 심포지엄 개최
평신도 대부분 북한 복음화 교육 못 받아… 대북지원 입장도 소극적
신자 통일 의식 퇴행이
교회서 비롯됨을 확인
본당 내 관련 교육 제안
“교회가 평화 중재자 돼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6월 10일 수원교구청 대강당에서 마련한 ‘한국 천주교인 통일의식, 무엇이 변했고 어디로 갈 것인가?’ 주제 심포지엄에서 위원장 이기헌 주교(맨 왼쪽)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민족화해’ 개념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등 남북 화해에 마중물 역할을 해온 한국교회 통일사목의 추동력이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덩달아 교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평신도들의 통일에 대한 의식도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남북 간 형제애 회복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라는 인식의 재정립이 우리 시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이기헌 주교)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앞두고 6월 10일 오후 수원교구청 대강당에서 연 심포지엄에서 나왔다.
‘한국 천주교인 통일의식, 무엇이 변했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주제로 마련된 이날 행사에서는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진행한 ‘2015년 북한 복음화에 대한 교회 구성원 의견 조사’ 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05년 처음 실시된 ‘북한 복음화 준비에 대한 설문조사’에 이어 10년 만인 지난해 7~8월 사이에 이뤄진 이번 조사 결과는 본당을 중심으로 한 교회 역할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었다.
‘2015년 한국 천주교인의 통일의식’을 주제로 한 박문수 박사(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의 분석에 따르면 2005년 조사에 비해 성직자, 수도자를 비롯한 평신도, 신학생 등 교회 내 모든 신원에서 남북이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태도에 대한 부정적인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실은 조사 결과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5년 내 교회 안에서 북한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경험 여부’에 답한 결과를 보면, 평신도 88.8%가 ‘없다’는 응답을 내놨다. 수도자 76.2%, 성직자 70.2%, 신학생 62.2%도 교회 안에서 북한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나마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들은 각종 연수나 교육 기회를 통해 북한 관련 교육을 접하기도 하지만, 평신도의 경우는 본당이 거의 유일한 통로여서 이들의 통일에 대한 의식 퇴행이 교회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특히 평신도들의 경우 북한과 관련 정보를 얻는 주요 통로가 텔레비전이어서 현재와 같이 언론을 둘러싼 매체 환경이 왜곡된 상황에서는 편향된 정보에 과도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조사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관심은 성직자나 수도자를 한 축으로 신학생, 평신도 순으로 나타났다. 눈 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가까운 미래에 사목의 중추를 담당하게 될 신학생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북한문제와 관련한 관심도나 적극성이 낮아져 이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와 대안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성직자(96.0%), 수도자(95.1%), 신학생(88.2%), 평신도(73.8%) 등 대부분의 교회 구성원이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평신도들의 관심이 낮게 나타났다.
이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 2014년 실시한 ‘2014 통일의식조사’ 결과와 비교해보면, 천주교 신자의 65.7%가 통일의 ‘필요’(매우 필요+약간 필요)를 느끼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개신교(63.9%), 불교(53.4%), 무종교인(52.9%)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어서 교회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가톨릭 신자들이 통일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에 대해 박문수(프란치스코) 박사는 “천주교가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중재 혹은 선도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대북지원 ▲북한이탈주민 등을 둘러싼 결과가 눈길을 끌었다. 향후 통일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에서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북지원에 대한 교회의 바람직한 태도’를 묻는 항목에 신부들은 ‘행사성 지원보다는 조용하게 지속적으로 지원하자’에 36.4%, 신학생은 43.5%가 답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에 비해 평신도들은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들에게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며, 북한 주민에 대한 지원은 부차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25.8%)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사회 적응에 대한 관심 정도’에 대해서도 ‘관심’(관심이 있다+매우 관심이 있다) 비율은 수도자(70.1%), 성직자(63.1%), 신학생(52.5%), 평신도(39.1%) 순으로 나타났다. 2005년도 조사에 비하면 평신도들의 소극성 내지는 부정적 경향이 매우 커졌고, 신학생들도 소극성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달리 말해 평신도 가운데 절반 가까운 이들에게 북한이탈주민이 달가운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민족화해와 한반도 평화를 향한 길을 넓혀가기 위해서는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평신도들에 대한 교육에 있어 새로운 고민과 패러다임 도입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변진흥(야고보) 연구위원은 ‘한국천주교회 통일사도직의 새로운 방향 모색’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이번 설문 조사가 “한국천주교회 통일신학이 거의 부재한 상태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신학적 인식의 틀 없이 교도권 차원의 사목 권한으로만 통일사도직을 이끌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보이지 않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게 되는지를 입증하고 있다”고 평했다.
변 위원은 이에 따라 “통일사도직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과 접근을 위한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통일사도직의 외적 환경을 이루고 있는 남북관계의 변화에 조응해 ▲통일 이전의 화해 협력 ▲통일 과정에서의 체제연합 ▲통일 이후 통일국가 완성 단계 등으로 구분해 각 단계별 특성에 맞는 통일사도직에 대한 총론적 이해와 접근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논평에 나선 전원 신부(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는 “교회가 성과 속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 현안을 토론하고 풀어가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교회가 남북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담론을 표출하고 정화하고 성장시켜나가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교회가 분열과 증오심을 부추기는 악의 세력에 맞서 ‘복음적 평화지대’를 구축하고 남북한으로부터 신뢰받는 ‘평화의 중재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나명옥 신부(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민족화해전문위원장·살레시오회)는 “신학생들이 북한에 대한 관심도와 적극성이 떨어지는 것은 교육 기회 부족뿐만 아니라 양성과정 상 매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의 제한성에 기인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통일 과정에서 다른 종교에 비해 천주교가 북한을 더 존중하고 있고 중재, 완충 및 선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대를 갖게 하는 부분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권오희 수녀(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민족화해분과위원장·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는 “한국교회의 민족 화해와 일치 노력은 구체적인 사목 체계가 뒷받침되지 못한 가운데 선언적 활동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데 공감하고 “분단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과 지지는 대다수 평신도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평신도들이 정보 공유와 교육을 통해 통일의 길을 넓혀나가는데 동참할 수 있도록 각 본당 내에 ‘민족화해분과’가 설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수원교구 이용훈 주교는 기조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통일에 대한 인식이 점차 낮아지면서 동시에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를 더 선호하는 국민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면서 “우리가 이룩하여 구현하는 통일은 평화를 밑거름으로 하고, 화해와 치유의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