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헬기가 추락한다. 빨리 조종간을 당겨야 하는데!’ 갑자기 눈구름 속에 들어간 헬기가 자세를 못 잡고 휘청거리다 급강하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조종간을 힘껏 당겼지만 조종간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도심의 건물 옥상이 눈앞으로 빠르게 다가올 때 온 힘을 다해 조종간을 당겼습니다. 그러자 항공기가 “위잉” 소리를 내더니 기수가 들리면서 급강하는 멈추었고 헬기는 인근 공터에 불시착했습니다.
1992년 2월 6일! 바로 이날이 저의 두 번째 생일이 됐습니다. 불시착 이후, 저는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조종간 잡기가 두려웠습니다. 헬기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등에서 식은땀이 났으며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종사였고 다시 비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조종사 윙(wing)을 달았던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끈질기게 매뉴얼을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불시착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돼 이듬해 조종의 베테랑이라 할 수 있는 교관조종사가 됐습니다.
항공기의 불시착은 예기치 못한 악기상(惡氣象)을 만나거나 기체 결함 및 조종사의 실수에 의해 발생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연속입니다. 항공기가 예상치 못하게 불시착하듯이 불확실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종종 인생의 불시착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제 40대 중년이 된 D가 어린 나이에 인생의 불시착을 경험했습니다. D는 대학 입시에 실패 후,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친구의 전화를 받고 외출했습니다. 그리고 나쁜 친구의 달콤한 속임수에 빠졌습니다. 결국 D는 수백만 원을 허망하게 날렸고 그것도 모자라 일 년 넘게 강제노동으로 착취당한 끝에 간신히 그 소굴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에라 모르겠다. 군대나 가자’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최전방에 배치된 D에게 군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전역 후 그는 대학입시에 도전해 합격했으며 대학원을 마치고 중소기업에 취업했습니다. D는 중소기업에 다니며 낮에는 실무를, 밤에는 이론으로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전역 10여 년 후, D는 선망의 대상인 S전자의 경력직 연구원 모집에 도전했고 당당히 합격함으로써 불시착으로부터 멋지게 비상했습니다.
불시착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대학입시나 취직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사업을 하다 사기에 휘말리기도 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일순간 추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의 불시착은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시착은 분명 인생에서 시련이요 고통입니다. 그러나 불시착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불시착했을 때 ‘어떻게 다시 비상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의미 없는 고통을 주시지 않습니다. 고통과 시련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성장의 지렛대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지극히 진부하고 평범한 격언 속에 불시착을 딛고 비상할 수 있는 답이 있습니다.
이연세(요셉) 대령/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안전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