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이중섭 화백의 교회와 인연 재조명
친구 구상 시인에게 “하느님 믿으려 결심” 고백했지만…
구상 자택에 자주 머물던 이 화백
옛 왜관성당 그린 작품 남기기도
세례 원했지만 못 받고 세상 떠나
국립현대미술관서 100주년 회고전
고(故) 구상(요한 세례자·1919 ~2004) 시인은 친구였던 화가 이중섭(1916~1956)을 왜관의 ‘관수재’ 라는 자신의 집에 자주 머물게 했다. 이때 이중섭은 왜관성당을 소재로 한 ‘왜관성당 부근’(1955년)이란 작품을 남겼다.
20세기 예술가 중 한국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국민 화가’ 이중섭.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회고전 ‘이중섭, 백년의 신화’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친구였던 고(故) 구상 시인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의 인연 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와 구상 시인은 1940년 전후 일본 동경대학에서 처음 만났으나 유학 후 원산에서 재회하며 격의 없이 친해졌다고 한다. 이후 해방 전후 혼란의 시대와 6·25전쟁 때 피란 생활 속에서 구상 시인은 이중섭에게 인간적인 친구로서, 또 순수 예술의 지향을 함께하는 정신적 동반자로 함께했다.
‘왜관성당 부근’은 이중섭이 대구 전시회 준비 차 구상 시인 집에 기거하며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그는 가족과의 이별과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으며 정신병원을 오가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정신적인 은신처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아득히 보이는 성당, 가파르고 멀어 보이는 성당에 이르는 길, 그 언덕길을 오르는 사람들 모습이 다소 고단하고 쓸쓸해 보이는 배경일 것이다.
이중섭 작 ‘왜관성당 부근’(1955년). 대구 전시회 준비 차 구상 시인의 집에 기거하며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구상 시인 가족이 수도원 내 왜관성당을 다녔던 상황에서 이중섭 역시 수도원을 찾는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산에서 남한으로 내려와 대구 근처 왜관에 터를 잡은 수도원의 이력도 청소년기와 신혼기를 원산에서 보낸 그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주었을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작품 속 성당 건물은 예전의 왜관성당으로서 현재 수도원 내 구 성당 건물이다.
이중섭은 왜관을 떠나며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순심중고등학교에 풍경화 1점을 기증했다. 이 그림은 줄곧 교장실에 걸려 있다가 30년 전 쯤, 당시 금액으로 1억 원에 판매돼 장학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는 “현재에도 수도원 산하 순심교육재단에서 장학기금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구상 시인과의 우정이 널리 회자되면서, 이중섭이 가톨릭 귀의 의사를 밝혔던 사연도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다. 이중섭은 1955년 4월 경 구상 시인에게 쓴 편지에서 “하느님을 믿으려고 결심 했다”며 “구(具)형의 지도를 구해 가톨릭 교회에 나가 모든 잘못을 씻고 예수 그리스도님의 성경을 배워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중섭은 세례를 받지 못한 채 그 해 9월 세상을 떠났다. 이 편지는 2004년 배달순(요한 사도) 시인이 부산 공간화랑에서 입수한 뒤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에 공개함으로써 알려졌다.
교계 전문가들은 “‘정직한 화공(畵工)’, ‘민족의 화가’가 되고자 했던 그의 예술혼과 함께 개인적 어려움과 괴로움 속에서 새로운 희망으로 가톨릭 신앙을 갈구했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 했다. 전시는 10월 3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02-724-6322.6326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