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얼굴 부위 암으로 고통받는 우즈벡 출신 나타나엘씨
마흔 넘어 얻은 딸이 눈에 아른거려…
고향 가족 생계 위해 택한 한국행
13년간 궂은일 마다않고 일했지만
갑작스런 병마에 모든 수입 끊겨
수술·치료비 마련할 길 없어 막막
병상에 누워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나타나엘(가명)씨. 나타나엘씨는 고향의 가족을 부양하다 최근 얼굴 부위에 암이 발생해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모든 수입이 끊겼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2000년 얼굴 부위에 암 진단을 받고 2년간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돼 우즈베키스탄 출신 나타나엘(가명·43)씨는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2003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이 있었기에 외로움과 향수는 사치로 여겼다. 2남5녀 중 장남인 나타나엘씨는 자신 한 사람이 고생하면 형제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힘들고 궂은일을 가리지 않았다.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든 날도 있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한 달 평균 150만 원의 수입에서 100만 원을 고향에 보내 동생들의 학업과 결혼, 어머니 부양에 보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생각에 뿌듯했지만 자신은 빠듯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기뻤다.
그러던 올해 4월 무렵 눈과 코 주위에 나타난 통증으로 고통스러웠다. 건강보험 혜택을 못 보는 외국인 노동자인데다 치료비를 감당할 엄두를 못 내 병원에는 갈 수 없었다. 약국에서 안약을 사다 넣으며 고통을 참았지만 차도가 없었고 통증은 날로 심해졌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이비인후과에 찾아가 검사를 받았고 암이 의심돼 조직검사를 했다. 결과는 ‘비강의 악성신생물’ 진단이었다. 코와 얼굴 왼쪽 광대뼈 사이에 발생한 암이었다.
나타나엘씨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암 투병 중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 먼저 걱정돼 입원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매월 나타나엘씨가 고향에 보내준 돈으로 학업을 마치고 결혼해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동생들에게 이역만리 타국에서 슬픈 소식을 전할 수는 없었다.
나타나엘씨는 결국 며칠 전 암 수술을 받았다. 국내법과 행정절차를 통해서는 도움을 받기 힘든 그에게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에서 인종과 신분을 초월해 자비의 손길을 뻗었다. 병원에서는 최대한 감면혜택을 찾고 있지만 수술비와 수술 후 치료비가 적지 않아 나타나엘씨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당할 길이 없다.
나타나엘씨는 중환자실에서 입에 호스를 낀 채 낯설고 물선 한국에서 보낸 13년의 세월을 반추했다. 일거리를 찾아 대구, 김천, 진주 일대를 전전하느라 2014년 마흔이 넘어서야 우즈베키스탄인 아내를 만나 결혼해 세상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딸을 얻었다
.
딸을 위해 이제까지보다 더 열심히 일하겠노라고 다짐하던 나타나엘씨에게 무서운 병마가 찾아왔고 수입이 끊긴 그는 월세 15만 원을 내지 못해 집을 비워줘야 했다. 부천에 사는 처제 집에 무상으로 거주하게 된 것이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었다. 같은 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우즈베키스탄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딸이 애처로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한 가정의 아들이면서 한 아이의 아빠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자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인 나타나엘씨는 물기 젖은 눈빛으로 간절한 도움을 청했다.
“제가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다시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아내와 딸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 딸을 고향에서 공부시키고 싶습니다.”
※성금계좌※
우리은행 1005-302-975334
농 협 301-0192-4295-51
국민은행 612901-04-233394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모금기간: 6월 29일(수)~7월 19일(화)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주)가톨릭신문사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