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환 신부의 인물과 영성이야기] (27) 프라 안젤리코 (상)
기도하지 않고는 붓을 들지 않았던 수도자
르네상스 전성기 때 활동하며 예술적 명성 얻어
성 요한 바오로 2세, 모든 예술가의 주보로 선포
루카 시뇨렐리 작품 ‘프라 안젤리코’.
■ 아름다움과 거룩함
오늘날 영성에 대한 많은 갈망이 있습니다. 영성은 참된 종교적 체험의 결실이자, 식별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거룩함과의 내밀한 만남이 존재할 때만이 이런 말들이 의미를 가지겠지요. 각 개인의 실재적 영성 체험에 있어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현대의 중요한 가톨릭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같은 사람이 이러한 사유를 탁월하게 전개하기도 했지요.
아름다움과 종교적 영성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역사 속에서 많은 신비가들이 영성적 체험 속에서,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르는’ 증언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영성적 통찰은 참되고 올바를 뿐 아니라 지극히 아름다운 실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영성은 존재의 참된 아름다움을 그리워하고 알아가는 인간의 깊은 정신적 갈망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참된 존재의 실현을 아름다움으로 체험하는 것은 사실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에서만은 아닙니다.
인간의 지성이 추구하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지혜’의, 관점에서도 역시 그러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의 신학적 사유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일찍이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고귀한 가치들을 ‘칼론’(kalon)이라고 표현하며 규범적 성격을 부여하였습니다. 삶의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은 궁극적으로는 이 ‘칼론’에 비추어 평가되고 상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칼론’의 본래 의미가 다름 아닌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고귀한 가치는 유용성이나 당위성을 떠나는 그 자체로 빛나는 광채처럼 아름다운 것이고, 그러기에 가장 추구할 만한 것이라는 통찰이 숨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그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차원을 ‘초월’하는 것이었지요. 또 초월자의 빛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완전성의 반영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중세 시대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 역시 존재를 탐구하면서 그저 겉으로만 드러나는 현상과 피상성을 넘어서는 존재의 초월성의 기본적인 범주로서 참됨과 선성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생각했습니다. ‘미학’이란 그래서 본디 존재를 ‘감지’(아에스테시스)하는 능력에 대한 앎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름다움은 그 존재론적이고 영성적 뿌리와 분리된 채 추구되고 이해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시각적 욕망의 대상과 동일시 돼버렸다 할까요.
오늘날 세상에 온갖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말 우리는 ‘존재적’ 차원에서 아름다움을 얼마나 자주, 또 깊이 체험하고 있는 것일까요? 과연 우리 내면의 선성을 피어나게 하고, 우리의 정신과 육신을 영성적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아름다움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얼마나 자주 체험됩니까?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내밀한 관계를 현대인의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피상적인 아름다움에 만족하고, 정화되지 않은 시각적 욕망을 충족시킬 대상만을 좇는 가운데, 현대인들은 아름다움이 사실은 자신들 내면의 영적 갈망과 본성을 충만히 실현시킬 길임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위대한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 므이슈킨 공작의 입을 빌려 ‘아름다움만이 세상을 구원할 것’임을 장엄하게 선언하였습니다. 우리 시대에 더 어울리고 절박하게 들리는 이 말은 희망이자 동시에 역설로 여겨집니다.
프라 안젤리코 작품 ‘천국의 궁정에서 영광을 받는 그리스도’.
■ 프라 안젤리코의 예술세계
영성이 부재한 인위적이고 피상적인 아름다움에 포위된 세상에서 한없는 피로감과 허무함을 느낄 때마다 사람을 구원하고 거룩하게 하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역사 안에 존재하였던, 아름다움을 통해 종교적 신비를 투명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던 위대한 영성가이자 예술가였던 인물들을 만나고 싶은 갈망이 생겨납니다. 그때 누구보다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수도자이자 화가였던 프라 안젤리코(1395~1445)입니다. 프라 안젤리코란 ‘천사와 같은’ 수사님이라는 뜻으로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의 사후 십여 년이 되었을 때 이미 사람들은 그를 이러한 이름으로 부르며 기억하였고 성인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시복된 것은 198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였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또한 그를 ‘모든 예술가의 주보’로 선포하였습니다. 현대 문화와 예술의 위기를 잘 통찰하고 있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아마도 이를 통해 존재의 빛 속에서 구원과 거룩한 진리를 반영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 우리 시대에도 꽃피기를 희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르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이미 예술가로서 유망한 미래가 열려 있음에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그 후로 프라 지오반니 다 피에솔레(피에솔레의 요한 수사)로 불렸습니다. 수도자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지만, 예술가로서도 당대에 이미 드높은 명성을 얻었고 당시 니콜라스 5세 교황이 직접 교황청으로 불러 그림을 그릴 것을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성에 초연할 수 있는 진정한 수도자적 겸손을 잃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피렌체의 대주교직에 오르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간곡히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도미니코회 수도자로서 수도자적 수행을 통해 신앙의 신비를 깊이 체험하고 살았던 동시에 예술적 탁월함을 겸비한 드문 예였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르네상스의 전성기에 살았고, 그 시대에 꽃핀 새로운 탁월한 예술적 기법들을 잘 습득하였지만, 그의 예술세계의 중심에는 중세 시대에 정점에 이른 조용하고 부드러운 관상적 신비가 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결코 붓질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할만큼 진실하고 겸허한 수도자였던 그의 삶과 영성은 그의 그림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유명한 문화사가 윌 듀란트는 그의 「문명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프라 안젤리코의 예술세계를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엘 그레코를 제외하고 어떤 화가도 프라 안젤리코처럼 그렇게 독특한 자기만의 양식을 만들어 낸 사람은 없다. 풋내기라도 그의 손길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선과 형태의 단순함은 죠토로 되돌아간다. 폭이 좁지만 가벼운 색채 조합(금색, 주홍, 진홍, 파랑, 초록)은 밝은 영혼과 행복한 신앙을 반영한다. 인물들은… 거의 낙원의 꽃들과 같은 모습이다. 이 모든 모습은 온화한 헌신, 기분과 생각의 순수함을 가진 이상적인 정신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이러한 이상적 정신은 중세의 가장 섬세한 순간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르네상스에 의해서는 두 번 다시 포착되지 않았다. 이것은 미술에 나타난 중세정신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