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중기념사업회(이사장 김남조)는 ‘김세중 조각상’을 제정,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7월 23일까지 김세중 조각가의 자택을 새로 단장한 문화예술공간 ‘예술의 기쁨’에서 열리고 있는 ‘김세중 조각상’ 30주년 기념전.
조각가 김세중은 종교적 믿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많은 조각을 통해 신의 섭리와 진리를 숭고한 예술로 구현하고자 했고, 다른 순수한 조각 작품을 통해 예술에 대한 열정을 구체화시켰다.
우리는 김세중의 조각에서 인간 내면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끌어내려 했던 한 예술가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그는 모든 예술은 엄격하고 가혹한 자기 학대에 가까운 고행이 따라야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의 조각에는 그러한 고행의 흔적이 순수한 예술혼과 결합해 탄생한 숭고미가 흐른다.
김세중에게 예술은 인간 부재의 참혹한 시대를 구원하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다. 따라서 김세중은 전후 황폐한 시기에도 평화를 주창했고, 지난한 근대사의 과정을 지나오면서 이 땅에 문화예술운동을 일으키고자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 땅에 인간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숭고함, 역사적 기념성을 두루 갖춘 조각상들을 남겼고, 그리하여 한국 조각계의 거목으로서 우리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은 개별자로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고 싶어 하면서도 영원한 진리에 도달하고 싶어 한다. 가장 일상적인 삶의 모습에서부터 고독과 열정이 뒤범벅된 영혼의 고통스런 몸짓까지 인간의 모든 존재는 이렇듯 죽음을 향한 결단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데 죽음은 바로 우리가 영원을 만나는 지점이다. 김세중 선생은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기념해 ‘영원의 모습’을 주제로 ‘종교미술국제전’을 열면서 종교미술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창조주의 모상이며 그 생명은 영원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감동적인 문구에서 우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예술가가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천형을 발견한다.
‘두 여인’, 1983, 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성모자상’, 1983, 청동, 서울 서교동성당.
보통 사람들은 일상에 파묻혀 당장 급한 일에 휘둘리면서 죽음으로부터 눈길을 돌린다. 그러나 예술가는 언제나 죽음을 마주 대하는 고행의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의 존재가 소멸하는 순간까지 영원과 순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로서의 자신에게 ‘영원의 형상화’라는 불가능한 사명을 부과했던, 그래서 늘 고독했던 조각가 김세중. 물론 산다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고독한 행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원을 사모하는 이들에게는 삶 자체가 신의 부재와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인해 언제나 고독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에게 예술의 길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림도 조각도 음악도 글도 모든 예술은 엄격하고 가혹한 자기 학대에 가까운 고행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이 어려운 것을 왜 하나’ 하는 회의감마저 가지면서… 하지만 이런 고행 없이 안 되는 것이 예술의 길이기는 하지요.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고행, 이것이 예술의 마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리움의 대상이 김세중에게는 신 자체였다.
“모든 예술은 신의 모상입니다. 때문에 끝없이 추구해 가는 것, 그것은 신 자체가 아닐까요? 나는 이것을 학생 때부터 지표로 삼아왔고 지금도 이에 긍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작가가 오만할 수도 고고할 수도 겸허할 수도 있는 것이 이 때문이 아닐까요?”
작가로서 김세중 선생은 오만하지도 조롱을 일삼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중세 조각을 연상케 하는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소박한 숭고함’이 넘쳐흐른다. 또한 모든 예술은 신의 모상 일진대 어떻게 어떤 작품에서는 영원의 추구를 포기하거나 무시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모든 예술은 알레고리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글로든 소리로든 시각적 이미지로든 예술은 그 자체로는 말할 수 없는 것,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형상화한다. 그래서 예술은 언제나 불가능한 시도다. 시로 풀지 않을 가장 착하고 진한 말은 사신(私信)에 바치고 그것으로도 다할 수 없는 말은 기도에 바친다던 어느 시인이 궁극적으로 할 수 있었던 말이 ‘가라앉는 침묵’이었던 이유도, 그 인생의 동반자였던 한 조각가에게 그의 작품이 ‘가슴을 에는 기도의 소산’이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김세중 선생은 자신의 마음에서 아직 승낙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창작 생활 40년 동안 한 번도 개인전을 열지 못하고 주저했다. 그의 반려자인 시인도 자신이 발표한 시들에 대해 “설익은 술을 퍼내어 손님들을 대접한 심정”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신의 모상’을 구현하려는 불가능한 시도로 인해 끝없이 고독하고 좌절하면서도 서로가 바빠 사랑하는 이의 빈자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묶어준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함, 예술에 대한 열정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아니었을까?
작품으로 인해 예술가는 후세에 영원히 빛나는 이름을 남기게 된다. 작품을 완성해가며 십자가의 천형을 겪어야 했던 작가가 바로 그 작품을 통해 부활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예술가와 작품의 관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다. 예술가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예술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진리가, 신의 광휘가 자신의 작품을 뚫고 솟아오를 때 예술가는 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제 예술가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시도를 하며 끝없이 좌절하는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김세중 선생은 행복한 시시포스다. 그렇다면 한 조각가의 가슴을 에는 기도, 지난한 창작 과정은 결국 ‘신의 모상’으로 완성된 작품을 통해 자신이 느낄 행복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행복은 지금 그가 누리고 있을 궁극적인 행복, 신 앞에서의 영원한 현존으로 인해 느낄 행복의 예시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 남긴 수많은 작품을 통해 여전히 우리 옆에서 숨 쉬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고독한 예술혼’은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화두로 남을 것이다.
김세중기념사업회 「조각가 김세중」(2006/현암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