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살펴주신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집필하고 연구하는 활동을 해 나가려 합니다.”
김학렬 신부는 6월 21일 천진암성지 전담을 마지막으로 원로사목자로 은퇴하면서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체력 저하로 실무를 맡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책임을 어깨에서 내려놓은 것이 시원하면서도, 더 일할 수 있었음에도 조금 일찍 은퇴하게 된 데에 아쉬움도 크다.
“지금까지 사제생활을 돌아보면 평범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제로서 살아가는 다양한 경험을 두루 했어요.”
중·고등학교 교사, 군종신부, 유학, 대학 교수, 본당 주임, 대리구장, 성지 전담. 김 신부가 그동안 펼쳐온 사목활동이다. 본당사목에서부터 특수사목, 대리구장에 이르기까지 교구 사제로서 활동할 수 있는 분야를 폭넓게 섭렵했다.
서로 다른 여러 사목분야에서 활동했지만, 김 신부가 사제 여정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 있다. 바로 ‘신앙선조를 알기 위한 노력’이다.
김 신부는 1984년 떠난 유학에서 ‘교회사학’을 택해 공부했다. 그리고 동양선교의 기초를 놓은 마태오 리치 신부 연구로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을 통해 신앙을 배우고 받아들인 신앙선조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북수동본당 주임 시절에는 동수원본당을 분당하면서도 수원 화성, 즉 수원성지에 얽힌 순교자들의 역사를 밝혀내고 성지화의 기반을 닦았다.
2007년부터 대리구장을 역임하면서는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순교자 현양에 박차를 가하고 성인들의 자취를 찾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김 신부는 “용인대리구장 임기 중에 사료와 족보를 바탕으로 김대건 성인의 부친인 김제준 성인의 묘를 찾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하다못해 일제강점기였더라도 시기가 빨랐다면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한국교회의 뿌리를 하루 빨리 밝혀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공부한 것이 많은데 그걸 글로 풀어낼 시간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는 집필활동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교회사학 분야는 역사학과 신학을 아우르는 지식을 갖춰야 연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신부들은 라틴어의 발음을 소리 그대로 한문으로 표기하곤 했는데, 역사학자나 한학자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문과 역사학을 알고, 그 바탕에 신학을 배운 사람은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만큼, 김 신부는 앞으로 자신이 그동안 공부해온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
김 신부는 은퇴하면서 후배사제들에게 “늘,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돌아보면 김 신부의 삶도 지칠 줄 모르는 공부의 연속이었다. 서른다섯 나이에 시작한 교회사 공부에서부터, 유학을 마치고는 교수로서 신학생을 가르치면서도 공부를 이어나갔다. 용인대리구장을 맡으면서도 온라인 강의를 통해 평소 부족하다고 여겨오던 한문공부를 해왔다.
김 신부는 “특히 한문을 공부하길 추천한다”면서 “한문을 공부하면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뿐 아니라 상식이 넓어져 사목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그동안 함께해온 교구 신자들에게도 “신앙선조의 삶을 따라 공부하고 기도하길” 부탁했다.
김 신부는 “뿌리 없는 나무는 시들어 버린다”면서 “그 뿌리가 우리 선조요, 그 선조들이 활동한 곳이 천진암성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자분들이 한국교회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 기도한다면 시복시성이 더 빨리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