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를 중재할 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가 나를 용서하면 나도 그를 용서하겠다.”, “그가 나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청하면 용서를 해줄 의향은 있다.”
감정이 올라와 있을 대로 올라와 있을 때는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입장을 계속 고수하기는 어렵지요.
이 입장을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나의 행복을 다른 이에게 맡긴다’는 것입니다. 왜 나의 행복을 다른 이의 손에 맡겨야 합니까? 상대방을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찬 헛된 계획은 일찍 접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도 어려운데 내가 어떻게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나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지요.
나의 일과 상대방의 일을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일에만 신경을 써야지요. 내가 용서를 하면 상대방도 용서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용서를 한다고 상대방이 감동을 받고 변화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다음에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여기에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젖느라고 애를 쓰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지요. 깜짝 놀란 제자들은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며 소리를 질러 댑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그들에게 당신이라고 밝히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하고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진짜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갑니다.
그리곤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워져 물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어떻게 하지요? 저는 이 부분이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는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건져 주시지요.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베드로가 ‘어- 빠지네, 어 어’하며 물에 빠지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의 어려운 날에, 자꾸 헤매게 되는 날에 우리는 고개를 떨구고 자신을 바라보기가 쉽습니다. 그러면서 자꾸만 자꾸만 좋지 않은 상황에 휘말려 들게 되지요. 용서하기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첫 번째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