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바라본 영성센터.
울릉도. 우리나라 화산섬은 제주도와 울릉도 딱 두 곳이다. 특히 울릉도는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절벽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섬 북서쪽에 소재한 천부항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송곳봉과 코끼리 바위, 울릉 3대 비경인 삼선암이 지척에 있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도 천부를 거쳐야만 올라갈 수 있다.
이곳 천부에 여행자들을 위한 쉼터가 마련됐다. 대구대교구 천부본당(주임 나기정 신부)이 올해 본당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여행자들이 편하게 쉬고 기도할 수 있는 ‘영성센터’를 건립한 것. 9개의 방에 40여 명이 한 번에 머물 수 있다. 각 방 발코니에 서면 푸른 바다와 함께 동해에서 일몰을 보는 특이한 경험도 할 수 있다.
■ 본당 신자들의 땀과 눈물
천부본당은 영성센터와 교육관 건립 외에도 50여 년 동안 해풍에 시달리며 노후화된 성당도 리모델링했다. 건축비만 해도 거의 20여 억 원에 이르렀다. 사실 150여 교우 중 50여 명이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시골의 작은 본당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본당 50주년 준비위원회 박화수(요한·63) 부위원장은 애초 50주년 준비를 계획했을 때만해도 그저 성당 페인트 칠 좀 다시 하고, 무너진 곳 보수하는 것 정도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임 나기정 신부는 성당 리모델링과 영성센터 건립을 추진했다. 박 부위원장은 “속으로 신부님께서 ‘뭘 잘못 잡수셨나? 아니면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다”고 당시 심정을 표현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본당 신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천부본당 사목회 김득호(마리아노·54) 총회장은 “미사에 나오는 50~60명의 힘으로 짓기에는 턱없이 힘들어보였다”면서도 “얼떨결에,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걱정 반, 그리고 설렘 반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본당 신자들은 2013년 6월부터 자금 마련을 위해 울릉도 특산물인 고사리와 삼나물 등 나물 판매를 시작했다. 교구행사마다 따라다니면서 나물을 팔아 수익금을 건축기금에 보탰다. 하지만 나물 판매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10년이 걸려도 건축비 모으기는 어려워보였다.
게다가 막상 시작해보니 필요한 액수가 계속 늘어 갔다. 모든 건축자재를 육지에서 들여와야 해 비용도 더 많이 들었다. 궂은 날씨와 인부 부족으로 공사가 멈추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울릉도의 또 다른 특산물인 호박엿이었다. 호박엿을 본당 신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도움을 호소하기로 한 것. 그렇게 대구, 포항, 경주 등을 돌며 30여 곳의 본당을 방문해 도움을 호소했다. 본당 한 곳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나와 3~4일씩 외지에서 지내야 했다. 나이든 신자들이 춥고 더운 날씨에 하루 종일 서서 모금활동을 하는 일은 버겁기도 했다. 하지만 본당 신자들은 생업조차 포기한 채 본당 리모델링과 영성센터 건축비를 모으기 위해 한 마음이 됐다.
리모델링한 천부성당 내부.
울릉도 천부항.
■ 본당 미래를 위한 투자
이렇듯 신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성당을 리모델링하고 영성센터를 건립한 이유는 바로 본당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지금이야 주일미사에 50~60명씩 나오지만, 고령화된 신자 구성으로 인해 신자수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본당을 운영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동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주임 나기정 신부는 “신자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본당이 살 길은 외부 신자를 유치하는 길뿐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울릉도를 찾는 신자들이 이곳에 머물며 충분히 쉬며 이곳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최신식 시설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본당의 리모델링과 영성센터 건립이라는 50주년 기념사업을 통해 천부본당은 또 하나의 열매를 맺었다. 바로 본당 공동체의 일치단결이다. 호박엿에 천부본당 안내 스티커도 나눠 붙이고, 돌아가며 외지 성당에 나가 모금활동을 하면서 신자들 사이엔 더 끈끈한 정이 생겼다. 김 총회장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함께 일하다보면 말다툼이 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모두 이해하며 한 몸처럼 봉사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본당은 지난 6월 29일, 주보 성인인 성 바오로 대축일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의 주례로 영성센터 축복식과 리모델링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조 대주교는 “동해바다가 바로 내다보이는 곳에서 축복식을 주례하기는 처음”이라면서 “울릉도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이 심신을 녹이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축하했다.
김 총회장은 “우리 본당은 작지만, 최고로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라며 “기도하고 쉴 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으니 많이들 찾아서 편안하게 쉬어 가길 바란다”고 신자들의 많은 방문을 부탁했다.
천부본당 영성센터 축복식이 6월 29일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거행되고 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