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와 프라 안젤리코의 재발견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들이 한동안 미술사에서 과소평가된 시기가 있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 이후 서양 미술사를 휩쓴 격정적이고 드라마가 가득 찬 후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근대의 회화들과 비교했을 때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들은 너무 평화롭고 관상적이라고 생각된 것이지요. 그러나 차차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들에 담긴 예술적, 영성적 가치가 재발견됩니다. 그러면서 프라 안젤리코의 생애에 대한 관심도 많아졌는데요, 많은 이들에게 그의 예술세계뿐만이 아니라 생애와 덕성도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은 다름 아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무엇보다도 미술사가로 이름이 높았던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에 태어나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이탈리아 예술과 문예 부흥에 큰 역할을 한 코지모 1세의 후원을 받아 작품활동을 한 사람입니다. 코지모 1세는 프라 안젤리코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에 속하는 도미니코 성당의 벽화(프레스코)를 남기도록 아낌없이 지원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화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특별한 독창성을 담지는 못해서 오늘날 대부분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몇 가지 건축물은 오늘날도 피렌체의 관광명소로 남아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우피치 미술관으로 사용되는 우피치 궁, 베키오 궁과 피티 궁을 잇는 복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사리의 이름을 역사에 남게 한 것은 미술사 연구에 있어 불멸의 작품인 그의 「미술가 열전」입니다. 원제는 「위대한 건축가, 화가, 조각가의 생애」이고 보통 줄여서 「열전」(Le vite)이라고 불리는 이 방대한 저작에서 바사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 200여 명의 삶과 예술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열전」은 서양 미술의 가장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 미술 연구에 있어 오늘날까지도 가장 기본적인 사료일뿐더러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읽는 재미와 함께 안목과 지식을 키워주는 살아있는 고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사리 자신이 미켈란젤로를 포함한 당대의 대표적인 미술가들과 개인적인 교분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미술사가이자 미술의 흐름과 기법에 대한 이론가로서의 상당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업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사에서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중요성을 확고히 자리 잡게 했다고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의 저자 스위스 출신으로 근대시대에 활약했던 위대한 문화사학자 야곱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 조차도 바사리의 이 저술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감탄합니다. “바사리와 그의 너무나도 중요한 저서가 없었던들, 북부 유럽, 더 나아가서 유럽 전체는 아직도 미술사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사리의 이 작품이 미술사에서 지니는 가치가 가시지 않았다는 것은, 최근 독일에서 이 「열전」에 대해 45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주석과 설명을 달아 새로운 번역을 펴낸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베를린 소재의 바겐바흐 출판사에서 2015년 완간).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에 세 권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이근배 역, 탐구당)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고, 이후 두 번에 걸쳐 축약본 내지 발췌본이 출판되었습니다(조르조 바사리, 「르네상스 미술의 명장들」(박일우 역, 계명대학교 출판부, 2008년), 조르조 바사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이근배 역, 한명출판사, 2000년)). 그러나 현재는 모두 절판 상태이고 1980년대 나온 완역본은 중고 시장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서 도서관에서 읽어봐야 합니다. 언젠가 새로운 번역으로 완역되고, 언급되는 작품들도 수록된 새 우리말 판이 출판되기를 손꼽아 기대합니다.
■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세계
조르조 바사리는 「열전」의 한 부분을 프라 안젤리코의 생애와 예술을 기술하는데 바칩니다. 바사리의 이 저서는 시대와 함께 명성을 더해갔고 당연히 그가 극찬한 프라 안젤리코의 예술 세계도 이 책의 독자들에게 보다 많은 관심을 끌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바사리는 후대 사람들에게 프라 안젤리코가 더 널리 알려지고 정당한 평가를 받는데 큰 기여를 한 셈이지요.
바사리가 프라 안젤리코를 묘사한 내용들을 읽어보면 그가 참으로 이 ‘천사와 같은 수도자’의 인품과 성성에 대해 깊이 존경하고, 그의 작품들에 경탄하고 그로부터 진심으로 감동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존경과 경탄이 뛰어난 감식안과 동시대인만이 가능한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결부되어 그의 프라 안젤리코의 생애에 대한 기술은 그 자체로서 생애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와 주요 작품에 대한 세밀한 해설, 열정적인 예찬이 어우러진 뛰어난 입문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열전」의 첫 단락을 소개해봅니다.
“피에솔레에서 온 죠반니 안젤리코 수사, 즉 세속명으로는 귀도라고 불렸던 그는 훌륭한 수도자이자 뛰어난 화가였다. 그는 다른 위대한 예술가로서, 또한 훌륭한 수도자로서 찬양받고 기억될 자격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만일 세속에서 시민으로서 살아가려 했다면, 그가 이미 어린 시절 익힌 뛰어난 예술적 기능으로 하여, 부유해졌겠지만, 그는 이러한 부와 명예에 관심을 갖지 않고, 대신에 깊이 숙고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결심하기를, 그의 깊은 본성에 귀 기울여, 평화를 얻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기로 하였다.”
바사리는 프라 안젤리코에 대한 책에서 그의 생애에 있었던 성덕을 보여주는 데 있어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그가 당시 교황이 제안한 피렌체의 대주교직을 거절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를 바사리는 그의 겸손과 현명함, 수도자로서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소명의식의 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프라 안젤리코는 당대에 가장 인기 있고 높이 평가받는 화가로 알려져서 수많은 의뢰를 받았었고, 피렌체만이 아니라 오르비에토나 토리노, 피사, 그리고 로마에서도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여러 조수들을 이끌고 긴 시간 타지로 여행하고 머물러야 했는데, 이는 당연히 수도자로서는 삶이 흐트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겸손함과 현명함의 품성과 성덕은 이러한 조건에서도 그로 하여금 훌륭한 수도자로 사는 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사리 역시 프라 안젤리코의 성덕과 경건함은 수도 규칙에 대한 충실한 순명에서 왔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바사리의 글에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그가 프라 안젤리코의 개별작품을 설명할 뿐 아니라 그의 예술적 위대함을 전체적으로 요약하는 대목입니다. 그는 먼저 프라 안젤리코가 보는 이에게 흠 없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즐거움은 그의 성품과 성성과 마찬가지로 ‘경쾌함’과 ‘거룩함’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기에 그렇다는 사실을 짚어냅니다.
최대환 신부 (의정부교구 정발산본당 주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