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사 - 신더셔 ‘제1회 한·중 국제 심포지엄’ 해설 (하)
한국교회 대사회적 노력은 중국 복음화 활동의 밑거름
중국 정부의 종교활동 제한으로 사회 내 교회 기초 다지기 힘들어
교육·출판 등에 관여할 수 없고 신학대학도 학위 인정 못 받아
중국교회에도 ‘한류’ 적잖은 영향
한국 사목경험 전수 해주면서 세상 복음화 위한 비전 제시해야
보편교회와 교량 역할도 필요
중국교회 차원에서 볼 때 1979년은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은 해로 기록될 만하다. 중국이 미국과 국교를 맺음으로써 굳게 걸어두고 있던 빗장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그때 이후로도 여전히 ‘죽(竹)의 장막’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 정부가 고수해오고 있는 ‘삼자’정책(자치(自治)·자양(自養)·자전(自傳)) 때문이다.
■ 중국과 형제교회인 한국
중국 복음화의 주역은 당연히 중국교회,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이다. 하지만 중국교회가 일반적인 가톨릭교회 모습에서 멀어져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겉으로는 ‘가톨릭’을 표방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복음화를 향한 여정이 주춤거리거나 뒷걸음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중이던 2014년 8월 17일 해미순교기념전시관에서 아시아 주교들과 만나 “이 광활한 대륙(아시아)에서, 교회는 유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대화와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증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아가 교황은 ‘대화’가 아시아교회 사명의 본질적인 부분이며, 복음화를 위한 연대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했다. 또한 대화를 위한 전제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명확한 자기 정체성 인식과 다른 이와 공감하는 능력을 지닐 것을 요청했다.
이 같은 교황의 발언은 중국교회를 통해 신앙의 선물을 전해 받은 한국교회에게는 남다른 무게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한국은 중국과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어느 나라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다. 이러한 두 나라 교회 간의 관계는 하느님나라를 향한 여정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바로 이웃하고 있는 형제교회로서 어깨를 겯은 여정의 첫 걸음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에서 출발한다.
■ 중국 복음화 가로막는 ‘세속화 현상’
이러한 의미에서 가톨릭신문사가 신더셔(信德社)와 함께 6월 25일 연 ‘제1회 한·중 국제 심포지엄’에서 논평자로 나선 김병수 신부(한국외방선교회)의 제안은 중국교회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김 신부 발표에 따르면, 중국 사회 안에서 다양한 종교와 신자들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중국의 개혁과 개방은 공식적으로 1978년 12월 제11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부터 시작됐다.
미국 고든콘웰신학대 국제신앙연구소(Centre for the Study of Global Christianity)가 지난 2013년 6월에 발표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그리스도교 성장률은 10.83%로 네팔(10.93%)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중국교회와 신더셔의 앞날은 밝지만 않다. 중국 사회를 통치해나가는데 있어 종교가 간섭하고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중국 정부가 언제든지 종교 활동에 제동을 걸어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 사회 속에서 종교의 범위나 역할이 축소되는 ‘세속화 현상’은 중국교회가 기초를 다지는 과정에서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결정적인 사건은 1922년 전국 비그리스도교 학자와 학생들로 이뤄진 ‘반종교대연맹’에서 종교와 교육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종교가 교육을 담당할 수 없게 됨으로써 교육에서 강점을 보여 온 가톨릭교회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에서 복음화 여정의 관건이라고 할 중요한 교두보를 잃어버리게 된다.
중국 사회에서 가톨릭교회가 처한 어려움은 고스란히 현실로 드러났다. 1903년 상하이에 설립된 중국 최초의 대학인 진단대학을 비롯해 진길대학, 보인대학 등이 모두 가톨릭교회가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들이었다. 1914년 통계에 따르면, 교회에서 설립한 학교는 8034개, 학생 수는 13만 명에 달했다. 1925년에는 학생 수가 31만 명을 넘어섰다. 또 1940년대 통계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 16개 신학교에 4106명의 신학생이 있었다.
그러나 종교가 교육에서 추방되면서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던 학교들도 폐쇄되거나 몰수당해 1946년에는 교육 분야에서 가톨릭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중국교회는 교육, 출판, 네트워크 사업 등에 관여할 수 없게 돼 점차 중국 사회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중국교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풀기 어려운 난제도 여기서 비롯된다. 중국 내 신학교는 대학교 체제와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중국 교육부로부터 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학원이나 연수원 정도로 간주돼 학위를 인정받을 수 없다.
이로 인한 문제는 중국교회 성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신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적을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상황은 교회가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결국 중국 사제들의 학문적 소양과 자질이 떨어져 중국 사회 지식인들과 유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중국교회가 처한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중국 사회 안에서 가톨릭교회는 대사회적 역량 면에서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복음화를 위한 밑거름 역할을 해야 할 사제 양성이 벽에 부딪혀 활로를 찾지 못함으로써 하느님나라를 향한 중국교회의 항로는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 매스미디어, 교회와 사회의 소통 통로
중국교회의 미래는 가톨릭교회가 중국 사회 안에서 어떻게 올바른 위치와 가치를 찾아가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는데 있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매스미디어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문화혁명 시절부터 인민들 사이에 정보가 공유되고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새장에 가둬놓듯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해왔다. 이렇게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언론을 ‘조롱(鳥籠·새장) 언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 인민들 사이 휴대전화 보급률이 75%를 넘어서고 온라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사람이 7억 명에 이르는 오늘날 새장에 가둬놓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새롭게 만든 것이 ‘조원’(鳥園·새공원) 개념이다. 넓은 그물망(방화벽)을 친 새공원 안에서 그만큼의 자유를 누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틈을 비집고 민중들 사이에 공유되는 정보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 다양한 형태로 확산되고 있는 매스미디어는 교회와 사회 간 소통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매스미디어가, 교회가 사회 속으로 용해돼 들어갈 수 있는 계기와 가능성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매스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은 한국교회에도 새로운 십자가를 던져준다. 문화의 ‘한류’(韓流)가 아시아 지역을 휩쓸면서 중국교회 안에서도 한류 현상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한국교회에 대한 인식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벤치마킹 모델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보편교회를 대변하면서 정치적, 지리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중국교회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교황청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중국교회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교량교회’(橋梁敎會)로서 중국교회가 고립되거나 열교화(裂敎化) 되는 위험을 줄이면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중국교회는 공산당 집권 이래 단절되다시피 한 교회의 복음화 사명과 사목적 실천을 한국교회에서 배우고 익힐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간 축적해온 사목적 경험과 복음적 비전을 중국에서 펼침으로써 아시아, 나아가 세계에서 위상을 키워나갈 수 있다.
이러한 길에서 한국교회가 중국교회에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복음 정신이다. 한국사회 안에서 민주화, 인권 회복, 분배정의, 양성평등, 환경보호, 빈부격차 해소 등을 위해 한국교회가 걸어 온 역사는 중국 사회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중국교회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