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파주지역으로 출장을 갔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양손에 짐을 들고 터덜터덜 허름한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현관을 지나는데 오른쪽 벽에 액자가 하나 걸려 있는 게 보였습니다. 쓱 훑어보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뭔가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그림 한쪽에 ‘참 좋다! 일이 많아서’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얼음 땡’이 됐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이 역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왜 화가는 일이 많아서 참 좋다고 했을까?’ 저는 오히려 일이 많아서 불평을 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참 일이 많았습니다.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저녁놀이 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 동료가 즐겁게 조깅을 하며 지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 친구는 한가하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나는 뭔가. 왜 이리 골머리를 앓으며 살고 있을까. 진급이고 뭐고 모든 걸 털어버릴까’라는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어떤 때는 일만 생각하면 뒷머리가 아프고 밥맛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어딘가 아파서 입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라는 헛된 망상을 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저만 일에 대해서 압박감을 느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무한도전’ 김태호 PD가 예능프로그램으로는 처음으로 2015년 한국방송대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면서 “한 주 한 주가 무섭고 두렵고 어떨 땐 도망가고 싶은 중압감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동병상련을 느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일이 많으면 싫어하는 것이 모두 비슷한 심정일 겁니다. 저도 일이 좋아서 하지는 않았습니다.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참 좋다! 일이 많아서!”라니. 웬만한 내공을 쌓지 않고는 이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 후 며칠간 저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를 되새겨 봤습니다. 그리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바라보니 ‘진정 일이 많은 것이 행복이구나’를 깨닫게 됐습니다. 즉 직장에서 일이 많다는 것은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고 자영업자라면 사업이 번창하는 것이며 회사라면 사업이 잘 된다는 의미일 겁니다. 구직자 입장에서 보면 일이 많다고 투정부리는 것 자체가 배부른 소리인 것이죠.
그러면 ‘우리에게 일이란 무엇일까요?’ 제 머릿속에서 스쳐가듯 자아성취, 성장, 생계, 돈, 관계, 스트레스, 짜증, 야근, 야식…. 이런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을 통해서 꿈을 이뤘고 자아 성취를 했으며 삶의 의미를 느꼈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등 긍정적인 요소들이 더 많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일이란 행복이자 삶의 의욕이고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참 좋다! 일이 많아서!”라고 외쳐봅니다.
이연세(요셉) 대령/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안전관리실장